이번주의 극장가 차림표는 다양한 맛이 그득하게 차려진 진수성찬이다. 애피타이저로 소개할 영화는 일본 원작과 할리우드가 만난 퓨전 요리 '쉘 위 댄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영화로 이미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이 영화는 리처드 기어와 제니퍼 로페스를 만나 조금은 느끼해졌지만 맛의 본질은 변함없다. 50줄에 접어든 리처드 기어의 중후함은 아쿠쇼 코지 못지않은 매력. 댄스 영화 특유의 스펙터클과 삶의 교훈(중년들이여, 도전하라!)이 깔끔하게 버무려졌다.'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의 남녀는 이혼 전문 변호사들. 앙숙으로 만난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급기야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이젠 자신들의 이혼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피어스 브로스넌과 줄리안 무어의 관록에 기대고 있?이 로맨틱 코미디의 미덕은 장르적 익숙함. 아주 새롭다기보다는, 늘 먹어왔던 음식에 향신료만 살짝 바꾼 맛이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 맥도날드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슈퍼 사이즈 미'는 웰빙 메뉴다. 감독인 모건 스펄록은 기꺼이 마루타가 되어 한 달 동안 맥도날드 패스트푸드만 먹는 생체실험에 돌입한다. 그 결과? 체중은 불어나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아지며 우울증 증세마저 찾아온다.
무조건 큰 것을 신봉하는 미국인들의 ‘슈퍼 사이즈 이데올로기’와 다국적 식품 기업의 비인간성을 꼬집는 이 다큐멘터리는 비만이 사회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고 말한다. 단지 패스트푸드를 먹지 말자는 주장이냐고? ‘슈퍼 사이즈 미’는 사회적 메커니즘 속에서 관리되는 개인 육체의 단면을 포착한다.
체 게바라의 ‘젊은 날의 초상’인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담백한 맛이 좋다. 요즘의 20대들에겐 베레모를 쓰고 수염을 기른 티셔츠 모델로 오해 될지도 모를 체 게바라는, 사르트르의 표현에 의하면 ‘우리 세기의 가장 성숙한 인간’이었다. 그는 미국의 제국주의에 맞서 라틴 아메리카 민중을 위해 투쟁하다 결국은 CIA에 의해 사살되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혁명적 선동구호나 ‘영웅 게바라’엔 별 관심 없어 보인다. 대신 게바라라는 인물을 만들었던 여정을 따라 움직이며, 그의 깨달음을 음미한다. 그리고 게바라의 여행이 끝나고 이어지는 라스트 신! 그 끝 맛은 잊기 힘든 감동이다.
터키계 독일인 감독과 배우들이 만난 '미치고 싶을 때'는, 올해 베를린영화제(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탔던) 작품상 수상작이다. 터키 민속음악의 독특한 맛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사랑과 결혼과 섹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남자와의 결혼을 통해 보수적인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여자 시벨. 계약 결혼이었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된 남자 차히트. 어느 순간 처절하고 어느 순간 아름다운 로맨스 ‘미치고 싶을 때’는 두 배우의 열연으로 더욱 빛난다.
코스 요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황홀한 디저트는 '피구의 제왕'. 벤 스틸러라는 발칙한 재주꾼이 온갖 오버를 선보이는 이 영화엔 어이없는 캐릭터들이 득실득실하다. 빚에 넘어가는 헬스클럽을 살리기 위해 피구 대회에 출전한 오합지졸들. 32강부터 시작되는 토너먼트에서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결승에 오른다. 깔끔한 엔딩과 귀여운(?) 등장 인물들, 그리고 초강력 카메오와 악취미 유머들이 유쾌한 코미디. 강추!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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