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은 지난 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이른바 ‘한국형 뉴딜정책’으로 알려진 ‘경기활성화를 위한 종합투자계획’을 발표했다. 그 동안 한국형 뉴딜정책에 관한 논의는 간헐적으로 있어 왔지만 이번 발표는 그 동안 검토돼 온 내용을 총망라한 결정판으로 보인다. 이 계획에는 지역균형발전, 기업형 신도시, 경제자유구역, 사회기반시설 투자확대 등 그 동안 이곳 저곳에서 운위되던 경제활성화 조치에 더해, 장학금 확충과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물론 개별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정책과제이지만) 다소 번지수가 모호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계획의 핵심은 내년에 경제성장률 5% 달성이 힘드니 총력을 다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재원이다. 이번 계획이 과거 경기활성화 방안과 메뉴는 동일하면서도 맛이 다른 근본적인 이유는 연기금을 동원하겠다는 점 때문이다.
정부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연기금이 계속 쌓여 정부저축은 늘어 가는데 경제 전체적으로는 투자가 부족하고 국민들은 연기금에 돈을 내느라 소비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연기금 돈은 똑같이 걷되, 정부가 연기금을 독려하여 이들이 직접 유치원도 짓고, 수영장도 짓고, 기숙사도 짓고, 공공청사도 짓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혹시 이 때문에 연기금이 손해를 볼 것 같으면 국민의 세금으로 다 보상해 줄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선 현재 축적되고 있는 연기금 자산은 미래에 지급이 약속된 부채이다. 지급의 규모가 너무 커서 잔고가 확률 1로 바닥이 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이 돈은 절대로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돈인 것이다.
둘째, 연기금이 채권에 주로 투자되고 있는데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말도 잘못됐다. 정부가 정말로 사회간접자본이나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기로 작정했다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재원조달을 위해 국채를 발행할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이 경우 국채의 소화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 때 연기금이 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그 돈으로 투자하면 된다.
셋째, 예상손실을 정부재정으로 보전해 주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도 잘못 됐다. 연기금의 재정건전성이 염려되는 이유는 연기금이 잘못되면 재정에서 보전해주어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기반시설 투자의 손실을 재정에서 보전해 줄 경우 연기금의 건전성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어도 궁극적인 우려사항인 국민 세금 지출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넷째, 모든 민자유치 사업이 그렇듯이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 줄 때는 실제 공사비용 뿐 아니라 적정이윤까지 보장해주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재정의 부담은 정부가 직접투자사업을 시행한 경우보다 더 증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부가 직접투자를 집행하는 경우에는 실제 공사비용만을 부담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예상손실의 개연성이 있는 상황에서 연기금을 동원할 수 있다는 발상은 연기금의 의사결정구조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만일 정부가 다른 자리에서 주장한 대로 연기금의 의사결정구조가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이라면 이런 발상 자체가 쉽게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인 5%를 하회한다는 점에서 내년은 불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불황시에 일시적으로 적자재정을 통해 일정한 한도 내에서 경기를 부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정공법을 따라야 한다. 혹시나 이번 발표가 재정적자 규모를 감추어 보려는 꼼수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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