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강풀(30·사진)씨의 작품에는 ‘환상’이 없다. 일상의 서사를 일상의 언어로 정면승부하는 작가가 그다. 그가 첫 장편 ‘순정만화’로 칙사 대접을 받으며 만화산업의 본토를 자처하는 일본에 진출했다. 후타바샤출판사와 맺은 계약금(선인세) 1,000만엔(약 1억원)은 해외에 진출한 한국 단행본 만화사상 최고액이며, 일본에서도 파격적인 수준이라고 한다.‘순정만화’는 기성세대가 ‘요새 어린 것들은…’ 하며 혀 차는 자리에 놓아둘 법한 열 여덟 살 여고생과, 패기 뒤의 공허함보다는 어영부영의 행복을 선택할 듯한 서른 살의 후줄근한 ‘아저씨’가 나누는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가 알던 ‘순정류’와는 거리가 멀다. ‘꼬라지’부터 ‘아저씨’는 더벅머리에 인체미학과는 아예 담을 쌓은 듯하고, 소녀 역시 10등신 청순파는 아니다. 한 아파트에 사는 두 사람은 이따금 엘리베이터에서나 마주치는 사이. 어느 날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고 두 사람은 갇힌다. 쭈뼛거리던 ‘아저씨’는 뒤에 섰던 소녀의 혼잣말 ‘아이 씨발 조땐네’에 자기도 모르게 부동자세를 갖춘다. ‘원조교제’의 코드가 차용되지만, 이는 작품 초반의 서사적 긴장 요소일 뿐. 몇몇 엑스트라와 함께 엮어가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뻔하다 싶은, 그래서 편하고 친숙하다.
지난 해 말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이 작품이 연재될 당시 하루 평균 200만 명이 매달렸고, 네티즌들의 그림 퍼나르기로 북새통이었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무료로 볼 수 있지만, 소장본 책이 출간 7개월여 만에 약 10만부가 나갔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 예정이다.
강씨는 "그냥 순정만화라는 말의 어감이 좋았다"고 한다. 그 단어가 주는 감성을 작품에 담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감성은 진선미로 진공 포장된 가공의 식상함과 허무·퇴폐의 위악을 넘어서서 일상의 미학으로 일본 만화와 맞붙게 됐다. 문학세계사 김요일 이사는 "한국 만화산업의 경쟁력을 확인하게 해 준 뜻 깊은 성과"라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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