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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글을 세계와 나눠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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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글을 세계와 나눠쓰자

입력
2004.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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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나는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기호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움베르토 에코는 완전언어(lingua perfetta)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끊임없이 체계적인 문자체계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해 왔다고 한다. 고대 비밀종교 집단의 암호문에서부터 현대의 에스페란토어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인위적인 문자체계가 만들어졌다.하지만 그 어떠한 인위적인 문자체계도 살아남지 못했다. 사실 한문이나 알파벳 혹은 아랍 문자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서 통용되는 모든 문자는 자연발생적인 문자다. 제작자나 제작 시기가 알려진 인위적인 문자 시스템은 인류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에코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이러한 ‘결론’을 들은 나는 강의가 끝나자마자 에코 교수에게 달려갔다. 나는 그의 결론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예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한글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인다. 이처럼 실제 통용되는 문자 중에서 한글처럼 인위적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한글이 인간이 내고 들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15세기의 음운론에 바탕을 둔 이론에 근거해서 체계적으로 제작한 인공적인 문자체계이기 때문이다. 한글의 뛰어난 표기능력은 우연이 아니라 그렇게 기획되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문맹률이 제로에 가까운 것이나 다일렉시아(독서장애증) 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도 한글의 우수성을 입증한다. 한글은 한국인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한글은 디지털 시대에도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이 자신의 문자를 컴퓨터 키보드를 통해 쓸 수 있게 하려고 얼마나 골머리를 앓는가를 보라. 나이를 따져보더라도 수천 년 된 자연발생적인 문자보다 고작 500년밖에 되지 않은 한글이 훨씬 더 젊다.

이제 우리는 한글이 널리 쓰이도록 하는데 힘써야 한다. 이것은 무슨 국수주의의 발로가 아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성공한 인공적 문자체계를 인류 보편적 문자의 하나로 삼아 모두 편하게 살아보자는 것이다. 알파벳보다도 훨씬 뛰어난 표기 능력을 지닌 표음문자인 한글을 한국어를 위해서만 쓰는 것은 전인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표기하는 문자체계가 달라진다고 해서 언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어나 일본어와 같은 언어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다만 그것의 표기를 한글로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여러 동남아 국가도 알파벳 위주의 표기 시스템에서 벗어나 한글을 사용하도록 권유해 볼 만하다.

일어나 중국어를 배우려는 유럽인들도 한글 하나만 깨치면 읽는 것만큼은 금방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한글을 세계화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일이 될 것이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시대에 각국의 언어적 경계선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문자시스템에 대한 수요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글을 널리 보급할 수 있는 최적의 시점이다.

한글의 종주국인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한글을 세계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일본어나 중국어를 포함한 각국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식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그것을 국내에서부터라도 사용하자. 쉽게 쓸 수 있는 것, 써서 비용이 절감되는 것은 자동적으로 퍼지게 되어 있다. 컴퓨터 키보드나 문자 입력 시스템 개발을 위해 쏟아 부어야 하는 엄청난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고 문자호환성의 문제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돈은 민족감정보다 힘이 세다.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일본인에게도 중국인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김주환 연세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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