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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배우는 리아 유치원/ 송송송..보글보글.. "EQ·표현력이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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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배우는 리아 유치원/ 송송송..보글보글.. "EQ·표현력이 쑥쑥"

입력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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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요리만큼 친근한 주제도 없다. 요리로 영어 배우기가 주목을 받고, 아이 성격 치료에 요리가 응용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유아기 요리활동의 효과로 ▦자신이 직접 음식을 만들면서 느끼는 성취감 ▦요리하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풀면서 습득하는 문제 해결력과 창의성 ▦재료 탐구와 요리 과정 중 자신의 느낌과 경험을 표현하면서 발달하는 언어능력 등을 말한다. 서울시교육청이 요리활동 시범유치원으로 지정한 송파구 방이동 ‘리아 유치원’의 바다반(만 5세 반) 수업 현장을 다녀왔다.오늘의 요리는 ‘베트남 쌈’. 얇은 ‘쌀종이’ 위에 고기, 과일, 야채 등을 얹어 돌돌 말아 먹는 베트남 전통음식이다. 선생님(정윤선·26)이 나눠준 쌀종이를 받아 든 아이들이 조잘대기 시작한다. "와, 정말 종이 같아요" "먹어봐도 돼요?" "접으니까 부서져요" "까칠까칠하네" 등 아이들 반응이 제 각각이다. 성격 급한 유진이는 벌써 맛을 봤다. "으, 맛이 왜 이래. 밀가루 같아요."

요리학습은 재료 탐색으로 시작한다. 만지고, 맛보고, 냄새맡는 등 아이들은 오감을 사용해 재료에 대한 나름의 느낌을 말하고 다른 친구들과 그 경험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관찰능력을 배우고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베트남 쌈을 위해 준비한 재료는 쌀종이, 계란, 맛살, 오이, 어묵과 뜨거운 물. 본격적인 요리가 시작됐다. "자 이제 우리 서로 역할을 나눠서 재료들을 채썰어 볼까요?" 선생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계란 프라이를 맡은 수아가 묻는다. "채썰기가 뭐에요?" 옆에서 오이를 썰던 윤진이가 나선다. "아주 얇게 자르는 거야. 맞죠, 선생님."

학부모 이지연(31)씨는 아이가 요리학습을 하면서 말도 많아지고 활동적으로 변했다며 요리활동에 대해 만족했다. "요리라는 대화의 공통 주제가 생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표현력도 부쩍 늘었구요. 요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편식도 없어졌어요." 그래서 전문가들은 수줍고 내성적인 아이의 성격을 고치는데 ‘요리 함께 하기’를 권한다.

칼로 맛살을 썰던 지호가 맛살이 잘 안 잘린다며 낑낑댄다. 간장 소스를 만들던 용진이가 슬쩍 간섭을 한다. "칼 대신 손으로 찢으면 더 잘 되잖아." 선생님도 거든다. "맞아요. 모든 일은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에요. 지호처럼 칼로 잘 안 썰어지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고 그걸 찾아낼 줄 알아야 똑똑한 어린이가 되는 거에요." 적잖이 자존심이 상했을 법도 하지만 지호는 씩씩하다. "손으로 찢으니까 정말 잘 되네."

다 썬 재료를 한데 모아 하나씩 볶을 차례. 수아가 주방장을 맡았다. 달군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둘렀다. ‘치~’ 기름 끓는 소리에 아이들이 "와" 소리를 지르자, 수아가 자랑스레 승리의 ‘V’자를 그려보인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프라이팬에 너무 바짝 다가선 수아 팔에 기름이 튄 것. 다행히 큰 일은 없었지만 선생님이 정색을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요리할 땐 정말 조심해야 해요. 날카로운 칼에 베거나 뜨거운 불에 데면 병원에 가야 되잖아요. 특히 수아처럼 불에 달군 기름을 다룰 땐 조심 또 조심하세요." 요리활동의 필수는 안전. 그래서 여기선 날카롭지 않은 빵칼을 쓴다.

곡절 끝에 드디어 쌀종이에 준비한 재료들을 싸는 시간이 됐다. 먼저 딱딱한 쌀종이를 뜨거운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든다. 쌀 종이를 적시던 유진이가 신이 났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쌀종이가 흐물흐물 해파리가 됐어요." 반대편에 있던 지영이는 쌀종이가 하얀 구름으로 변했다며 신기해 한다.

요리학습의 특징 중 하나는 풍부한 단어 습득과 표현력 향상. 5살 딸 소연이를 이 유치원에 보내는 강은하(32)씨는 그런 점에서 만족이다. "아이가 요리를 배우면서 ‘쫀득쫀득’ ‘보들보들’ ‘밍밍하다’ 처럼 또래 아이들이 잘 안 쓰는 단어를 많이 써요. 말할 때도 ‘닭고기가 맛있어요’같이 간단한 문장 보다는 ‘닭고기가 쫄깃쫄깃 정말 맛있어요’처럼 더 복잡하고 맛깔나게 표현하더라구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맛보기 시간. 그런데 용진이의 욕심이 좀 컸나 보다. 쌈 재료를 너무 많이 얹어 쌀종이가 그만 찢어졌다. "먹고 싶은 만큼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만큼 얹으세요. 뭐든 욕심을 너무 부리면 안 좋아요. 그리고 같이 먹는 다른 친구들도 생각해야죠. 자 이제 먹어볼까." 선생님 말이 끝나자 마자 쌈을 입에 넣은 아이들. "달콤해요" "구수해요" "내가 만든 거니까, 짱 맛있어요" 등 자기들 솜씨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입맛을 다시던 윤진이가 기특한 제안을 한다. "우리, 원장 선생님 드릴 것도 만들자."

먹은 걸로 요리학습이 끝난 건 아니다. 남은 재료나 음식 정리하기, 설거지, 요리도구 제자리에 갖다 놓기 등 뒷정리가 남았다. 자기가 쓴 칼이며 도마를 싱크대에 갖다 놓고 음식 쓰레기를 버린 뒤 총총히 교실을 나서는 아이들이 제법 의젓하다.

글·사진 김일환기자 kevin@hk.co.kr

■김명희 리아유치원 원장 "부모와 함께 요리하면 가족 사랑이 느껴져요"

"집에서도 아이들과 요리해 보세요."

리아 유치원의 김명희 원장은 "엄마, 아빠, 아이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함께 모여 요리를 하면 아이 인성교육에도 좋고, 가족간 사랑이 보글보글 맛있게 끓여질 것"이라고 말한다.

김 원장이 강조하는 요리활동의 장점은 창의성과 논리력 향상 그리고 문제 해결력 증진. "아이가 요리를 할 때는 ‘재료는 뭘로 할까’ ‘이것은 끓일까 볶을까’ ‘어떤 그릇에 담을까’ 등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그러다가 예전에 했던 요리 기억을 되살려 적절히 응용하기도 하구요. 이런 사고 과정을 자주 훈련하다 보면 아이가 다른 상황에 맞닥뜨려도 거기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죠."

이처럼 요리가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좋은 걸 알면서도 유치원들이 선뜻 요리활동을 커리큘럼에 넣지 못하는 것은 물과 불을 교실로 끌고 오는 번거로움과 교사 인원의 부족 때문이다. 김 원장은 "더러 요리를 하는 유치원이 있지만 거의 선생님이 다 하고 아이들은 그냥 지켜보다 끝내는 경우가 많다"면서 "모든 유치원들이 요리영역을 활성화해 학원에서 집에서 수학, 영어 등을 배우느라 받는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씩 해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일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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