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스포츠 라운지] 그린에서 만난 세리아버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스포츠 라운지] 그린에서 만난 세리아버지

입력
2004.11.09 00:00
0 0

"골프란 게 원래 ‘삐뚜루’만 안 치면 되는 거여." 박세리(27·CJ)의 아버지 박준철(55)씨의 골프학개론 첫 장 첫 줄에 나오는 지론이다. 6일 경기 용인 레이크사이드골프장 서코스에서 열린 ADT·CAPS 인비테이셔널 최종 라운드. 정상은 아니지만 박세리는 공동 2위에 오르는 선전을 펼쳤다. 박씨는 딸 세리의 재기를 확신하는 듯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이제 세리 샷이 ‘반듯이’ 가잖어. 그러면 고생 끝인 거여"라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박세리와 아버지 박씨. 골프에 관한 한 영원한 사제지간인 이들 부녀는 사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서기가 두려웠을 만큼" 샷에 자신을 잃었다는 ‘골프여왕’ 박세리. 그런 딸을 지켜봐야 하는 ‘부정(父情)’ 또한 편했을 리가 없다. 한달 만의 복귀전에서 꼴찌 수모를 당한 뒤 귀국한 지난달 18일. 새벽같이 대전집을 나서 인천공항으로 박세리를 마중 나간 박씨는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울먹이는 딸에게 "걱정말어. 아빠가 있잖어"라는 말만 해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음날 당장 연습장에 가서 쳐보게 했더니 샷이 망가져 있더라구." 박씨는 테이크 백을 시작할 때 왼손 손목이 먼저 꺾이는 데다 왼쪽 어깨가 먼저 떨어지는 점을 발견하고 즉석에서 샷 교정에 나섰다. 누구보다 세리를 잘 아는 박씨의 원포인트 레슨은 효과 만점이었다. 샷 감각을 회복한 박세리는 이후 출전한 3개 대회에서 모두 상위권에 입상, 부활 가능성을 알렸다.

"벤츠가 고장 좀 났다고, 티코가 되는 건 아니잖어." 박씨의 이른바 ‘벤츠론’이다. "말썽난 부분만 손 좀 보면 좋은 차는 다시 싱싱 달리게 돼 있다"는 설명이다.

박씨는 무엇보다 정신재무장이 필요했었다고 말했다. "자기 샷을 믿고 내지르면 되는데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니까 샷이 달아나는 법이거든." 박씨는 샷의 결과에 맞서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주문했다. 그래서인지 "즐기면서 치는 법을 깨달았다"는 박세리는 이날 라운드 내내 편안한 표정이었다.

박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번 시련은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한 격동기"에 해당한다. "맨날 ‘스테키(스테이크)’만 썰 수 있어. ‘자장면’ 먹을 때도 있는 거지. 산 넘고 물 건너고 해야 스토리가 되는 것이여." 경기 도중 박세리의 샷이 러프에 빠지자 "걱정할 것 없어. 하도 러프에서 많이 치다 보니까 손목 ‘심(힘)’도 엄청 세졌어"라는 해설도 내놓았다.

박세리는 고국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영광이자 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달 초 열리는 한일골프대항전 출전도 당연하다는 반응. "한일전은 제기차기를 해도 떠들썩하기 마련인데 세리가 빠지면 안되지."

박씨는 "때로는 세리가 제일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보기는 화려할 지 몰라도 한창 놀 나이에 땡볕에 운동한다고 목에 주름 생기지, 하체 굵어지지…" 공동 묘지에 남아 혼자 연습을 하던 딸을 떠올리던 박씨는 "아직도 아빠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딸이 고맙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큰돈을 벌기는 했지만 명품이 뭔지도 모르는 세리가 동대문시장에서 옷값 1,000원을 깎을 만큼 ‘짠순이’라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너무 골프만 생각하는 것이 세리의 단점"이라는 박씨는 "서서히 사윗감을 찾아봐야겠다"며 눈을 크게 떴다. "돈은 상관없고 생긴 것은 ‘으악’ 소리만 안 나오면 된다"는 박씨는 "이왕이면 세리 처지를 이해해주는 운동선수였으면 좋겠다"고 귀띔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