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공사현장의 식당(속칭 함바집)에서 일하던 아가씨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홍보우먼으로 늦깎이 변신을 했다. 홍보대행사 ‘디딤’의 이정미(35)씨는 대졸 엘리트 사원이 수두룩한 홍보업계에서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뒤늦게 제 꿈을 향해 걸어가는 것 뿐입니다."지난 여름 서울 강남의 유명 실내포장마차 ‘으악새’와 천안의 자연생태관 ‘골드힐 카운티’를 홍보하며 명함을 내민 그의 전 직장은 서울 신림동 공사장의 밥집. 오토바이로 현장에 식사를 날라 주던 ‘빨간 모자 아가씨’다. 일찍이 아버지가 가정을 버린 뒤 어머니 혼자 힘으로 꾸려온 어려운 살림을 돕기 위해 15년 전 고교를 졸업한 뒤 뛰어든 일이다. "집 주인이 집세를 자꾸 올려달라고 해 어머니가 한 밤에 혼자 우시는 걸 보고 진학 대신 생활을 돕기로 결심했지요."
그렇게 어머니가 운영하던 작은 밥집에서 2년 정도만 일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그리고 돌아와서는 설거지와 장보기까지. 아침, 점심, 오후 새참까지 하루 세 번씩 바쁜 일정이 반복됐다.
"배달을 위해 오토바이를 타는 시간이 하루 6시간은 족히 됐습니다. 신림4동 공사 현장은 다 다닌 셈이에요."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형편도 조금씩 나아져 24살 무렵에는 전셋집도 얻었다. "낮에는 상을 펴 손님을 받고, 밤에는 이불을 펴고 다섯 식구가 자던 단칸방을 벗어났을 때만큼 기뻤던 적도 없어요."
몇 년 후에는 작은 집도 장만 할만큼 살림이 나아지자 미처 못 다한 공부에 미련이 들었다. 늦게라도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해 2년 전 장안대 경영정보학과에 입학했다.
"고교시절 조안 리씨의 책 ‘스물셋의 사랑, 마흔 아홉의 성공’을 읽고는 홍보 업무에 흠뻑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올 초 벤처기업에 다니는 동생의 도움으로 ‘디딤’에 일자리를 얻게 됐다. "나이도 많고 학력도 변변치 않지만 일하려는 열정만은 높이 평가해주신 것 같습니다."
"보도자료를 만들고 기자들을 만나면서 매일 많이 배운다"는 그는 요즘 온라인가계부 ‘이지데이’의 홍보기획 일에 몰두하고 있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보낸 지난 시간이 힘겨웠어도 행복했듯이 지금은 또 다른 비상의 꿈을 꿀 수 있어서 역시 행복합니다."
글 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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