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교과서에 헌법과 법률, 재판 등에 대해 잘못 기술된 내용이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헌법재판소는 7일 교육인적자원부에 ‘초·중·고 사회과 교과서에 대한 검토’라는 의견서를 내 현행 일부 교과서의 오류를 지적하고, 미흡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서술의 보완 등 교과서의 수정을 적극 요구하고 나섰다.◆ '행정재판’도 모르는 교과서 = 현행 초등학교 교과서는 ‘행정재판’을 ‘행정기관이 한 일 때문에 개인이 해를 입었을 때,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헌재는 ‘행정기관이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여 개인이 손해를 입었을 때, 그 행위를 무효로 하기 위한 재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행정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민사재판에 해당하며, 행정재판은 행정기관의 불법적 행위 자체를 ‘무효’ 혹은 ‘취소’하는 소송이라는 설명이다.
초등 교과서는 또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 가운데 ‘개인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명제를 ‘근로의 자유’로 규정했는데, 이는 ‘직업선택의 자유’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헌재는 지적했다.
◆ ‘악법도 법’이제 그만 = 헌재는 중등 교과서가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준법정신의 대표적 사례로 소개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실질적 법치주의와 적법절차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헌법체계 하에서 준법이란 정당한 법, 정당한 법 집행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일화는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사례로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헌재는 소크라테스 일화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형식적 법치주의’를 비교 토론하는 자료로 적당하며, 준법교육을 위한 자료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헌재는 싱가포르가 미국 대학생에 대해 태형과 곤장형을 집행한 일화를 예외 없는 법 집행 사례로 소개한 데 대해서도 태형·곤장형은 인간존엄에 반하는 형벌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적절치 못한 인용이라고 설명했다.
또 중등 교과서가 국가의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공적인 권리 중 국가적인 것’으로 분류한 것은 "입법권 등 3권을 권리의 일종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라며 ‘공동체와 시민의 권리’의 장에서 이를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 "헌재 역할과 헌법재판 소개 빈약" = 헌재는 이 같은 오류 외에 교과서들이 헌재의 역할과 구성, 권한, 헌법재판의 종류를 지나치게 빈약하게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 교과서는 헌법재판을 설명하면서 헌법소원만 다루고 있고, 중등 교과서는 여러 소송의 형태를 서술하면서 헌법소원 사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 고교 교과서도 헌법재판의 종류와 절차 등을 소개하지 않고 있으며, 탄핵심판, 권한쟁의심판 등의 언급도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헌재는 일부 교과서가 낙선운동에 대해 시민단체, 교수, 학생의 의견을 실질적 법치주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헌재의 결정은 참고의견 정도로 묘사한 것에 대해 헌재의 신뢰를 저하시킬 수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헌재는 지난해 11월 전담팀을 구성해 초등 1종, 중등 9종, 고등 5종 등 총 15종 30권(교사용 지도서 포함)의 교과서를 분석, 7차례 회의를 통해 최종 보고서를 완성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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