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에 살면서] 모멸감 안고 한국을 떠납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모멸감 안고 한국을 떠납니다

입력
2004.11.08 00:00
0 0

당분간 이 지면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어렵게 되었다. 전에 나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와 유학생들이 겪은 부당한 일들에 대해 다소 비판적 어조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공항과 출입국 사무소에서 그들이 받는 불합리한 대우를 함께 생각함으로써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글이었다. 그런데 내심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현재 서울대에서 ‘훈민정음’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 나는 유학생 비자가 지난달 말로 만료돼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비자연장을 신청했다. 교육부에서 발급한 6개월 정부장학금 연장수여서와 지도교수님께서 직접 써주신 연장 의견서 등도 제출했다.

그런데 담당자는 "한국에서 떠나라"고 고압적으로 명령했다. 그는 제출서류들을 볼 생각도 않고 "왜 수료 후 2년이나 지났는데 논문을 쓰지 않았는가" "한국에서 좀더 돈을 벌려고 그러는 것은 아닌가"라며 냉소했다. 지금까지 다른 유학생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한국인도 수료 후 2년 만에 논문을 제출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항의했으나 그들은 "법규가 그러니 내일 당장 출국하든지, 비행기 편도표를 예약하고 그 기간만 한국에 체류하든가 하라"고 말했다.

교육부에서 내준 국비장학생 인준서를 보여주고 직접 교육부 담당자와 통화도 해보게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교육부가 어떻든 법무부에서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이라는 것 뿐이었다. 심지어 "기간을 연장한 유학생들이 있으면 데려와라, 그들도 당장 출국시켜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답답한 마음에 폐를 무릅쓰고 지도교수님께도 전화부탁을 드렸으나 담당자의 무례한 응대에 교수님도 무안만 당하셨다.

나는 다음날로 급히 돈을 마련, 비행기표를 샀고 8일 한국을 떠난다. 10여년 동안 한국의 낯선 문화와 생활 환경 속에서 한 공부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자료들이 모두 여기에 있고 교수님과 동료들의 도움이 필수적인 까닭에 돌아가 혼자 논문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한국전 참전용사로 초청받아 직접 한국에 오시기도 했던 외삼촌과, 내가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을 대견스럽게 생각하시는 부모님께 이런 사정을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이곳에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한국학을 연구하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겠다는 자부심으로 온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 무엇을 홈쳐가려는 불법 체류자인 듯 모든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차가운 시선이 심어준 이 모멸감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술탄 훼라 아크프나르 터키인 서울대 국문과 박사과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