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넷. 그녀의 나이를 알면 다들 놀란다. 줄곧 10대 소녀 역을 맡아온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때 묻지 않은 눈을 가졌기 때문 아닐까. 세상을 다 담아낼 듯 맑고 깊은 눈은, 때로 열 마디 말보다 눈빛 하나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에게 큰 재산이기도 하다.지난해 영화 ‘장화, 홍련’과 ‘…ing’로 단박에 충무로 기대주로 떠오른 임수정이 긴 휴식을 끝내고 돌아왔다. ‘상두야 학교가자’의 이경희 작가, 이형민 PD가 다시 손잡고 8일 첫 선을 보이는 KBS2 월화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주인공 은채 역을 맡았다.
출연 영화의 잇단 성공으로 충무로의 ‘러브 콜’이 쇄도했을 텐데, 이 드라마를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줄거리는 현실에 있을까 싶은 얘기지만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매우 사실적이에요. 주·조연을 떠나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죠."
‘미안하다…’는 호주로 입양됐다가 양부모에게도 버림받고 들개처럼 자란 무혁(소지섭)이 생모와 톱 스타가 된 동생 윤(정경호)을 향해 벌이는 처절한 복수극으로 시작한다. 윤의 코디네이터로, 어려서부터 그를 흠모한 은채는 그 복수극의 덫에 걸려든다. 작가의 말을 빌면 "징그러운 사랑 얘기"지만 ‘상두야…’가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따스하고, 또 더러는 코믹한데, 그 중심에 ‘국보급 순정파’에 ‘못 말리는 정의파’인 은채가 놓여있다. "밝고 씩씩한 역이에요. 울고 싶으면 울고 화내고 싶으면 화 내고… 원래 내성적인 편인데 요즘 말도 많아지고 자주 웃고 낯선 이들과의 만남도 즐거워졌어요. 참 신기하죠?"
어느 새 은채 역에 푹 빠져 "너, 임수정 맞냐"는 말까지 듣는다지만, 줄곧 어둡고 우울한 캐릭터를 맡아와 연기변신이 쉽지 않았을 터. 그녀는 따로 연기수업을 받기보다 "좋은 영화 보고 실컷 느끼고 감동하고 깨닫고 고민하고 그러면서 배운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에 대해 작가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예쁜 배우"라는 찬사를 보냈다.
"딱히 역할모델로 삼는 배우는 없지만, 량차오웨이나 대니얼 데이 루이스처럼 눈빛이 좋은 배우가 좋다"고 말하는 임수정. 짧은 만남을 마무리하며 좀 유치한 질문을 던져봤다. 실제로 극중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사랑을 택할까.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아, 잘 모르겠어요. 사랑은 너무 어려워요"라며 고개를 흔든다. 아직은 사랑이 어렵기만 하다는 그녀가 ‘죽음도 두렵지 않은 지독한 사랑의 기록’을 어떻게 써내려 갈지 궁금하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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