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의 신화적 존재인 독일 안무가 피나 바우쉬(64)가 한국을 여행 중이다. 한국을 소재로 한 신작 구상을 위해 자신이 이끄는 독일 부퍼탈무용단 단원들과 함께 지난달 28일 입국해 서울과 지방 곳곳을 돌며 한국을 체험 중이다. 내년 6월 서울에서 세계 초연할 이 작품은 LG아트센터가 의뢰한 것으로, 1980년대부터 그가 해온 나라 또는 도시별 작품 프로젝트의 열 세 번째 작업이다.그는 무용과 연극의 경계를 허문 탄츠테아터(Tanztheater·춤연극)를 창시해 현대무용의 흐름을 바꾼 주인공. 1979년 작품 ‘봄의 제전’으로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낯선 이름이었으나, 2000년과 2003년 LG아트센터 초청작 ‘카네이션’과 ‘마주르카 포고’로 열풍을 일으켰다
12일까지 2주간 한국에 머물 피나 바우쉬 일행의 답사는 서울에서 시작됐다. 입국해서 첫 일주일 동안 시내 고궁과 산, 강남의 번화가, 인사동과 남대문 시장, 미아리 점집, 가난한 비닐하우스촌과 부자들의 최고급 아파트, 전통혼례와 현대식 결혼식, 절과 교회 등을 찾았다. 다양한 한국음식을 맛보고 사물놀이와 우리 민요도 배웠다.
이들이 경남 통영을 찾은 4일, 잔잔한 바다를 끼고 앉은 산양면 해란마을에서 수륙새남굿이 벌어졌다. 이 마을의 낚시터 주인이 장사가 잘 안 돼 재수 좀 붙게 해달라고 하는 굿이다. 수륙새남굿을 제대로 격식 갖춰 하기는 30년 만이란다. 11대 째 무업을 해온 정영만(48) 일가의 무녀와 악사들을 청했다. 모처럼 보기 드문 굿을 한다는 소식에 국내 으뜸 춤꾼인 밀양백중놀이 북춤의 하용부, 고성오광대 말뚝이춤의 이윤석도 각각 밀양과 고성에서 달려와 흥을 보탰다.
굿은 낚시터에서 해가 넘어가는 오후 5시 반부터 3시간 동안 펼쳐졌다. 처음 보는 굿에 피나 바우쉬 일행은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굿은 모름지기 너나 없이 어울려 잘 놀아야 맛이 나는 법. 멀리서 온 이방인들은 처음엔 쭈뼛댔다. 하지만 굿판의 신명이 오르자 흥을 못 이기겠는지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굿 보러 온 동네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춤추고 노는 모양새가 무녀 말마따나 "용왕이 시껍할" 노릇이었다. 수줍고 조용해서 가만히 지켜보던 피나 바우쉬도 돈 놓고 절 하고 동네할머니 따라 춤도 추며 하나가 됐다.
늦은 밤 통영 시내로 돌아온 그는 "이번 여행에서 한국의 인상이 하도 강렬해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정말 곳곳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를 돌아보면 지난 20여 년간 한국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해진 느낌이에요. 2주라는 기간이 한국을 알기에 충분치는 않지만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노력 중입니다. 국가와 도시별 프로젝트를 하면서 보고 느낀 것 중 작품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정말 적다는 생각에 슬플 때도 있지만, 그런 경험은 저나 단원들의 몸과 마음에 스며들어 다른 작품에도 녹아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 단원 김나영을 통해 한국 얘기를 많이 들었다는 그는 국립무용단을 부퍼탈로 초대해 한국전통춤을 소개했는가 하면 하용부의 춤은 비디오로 보고 반해 친구가 됐다. 한국 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와 황병기의 가야금음악으로 두 편의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인연과 이번 여행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태어날 신작은 내년 서울 초연에 이어 세계를 돌며 한국을 알리게 된다.
피나 바우쉬 일행의 남은 일정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북촌한옥마을 방문, 제사와 돌잔치 참석, 태평무 배우기 등이 들어있다.
통영=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