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분명 우리 땅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말이다. 그런데 한일 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독도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영토 분쟁을 벌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자명하다 해도 그 근거를 정확하게 널리 알리려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토라는 말의 의미가 지리적인 국경 개념으로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땅과 물에 사람들이 남긴 갖가지 자취, 그에 얽힌 기억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영토가 아닐까. 요컨대 영토는 지리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역사적·문화적 의미 그 자체이기도 하다.그렇다면 우리는 문화·역사적 영토를 지키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 왔을까? 하나의 예로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751년 이전)을 둘러싼 논의들을 살펴보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본이며 1966년 불국사 석가탑 탑신에서 발견되었다. 그전까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으로 인정받던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보다 20년 앞서고, 중국 최고의 목판인쇄본 ‘금강반야바라밀경’(868년)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내주기 싫은 일본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제작 추정 시기를 석가탑 완공 시기인 8세기 후반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중국은 당나라 낙양에서 인쇄한 것을 신라가 입수하여 석가탑에 보관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을 놓고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직지심체요절’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서서 간행되었다. 하지만 금속활자본에서도 원조가 되고 싶은 중국은 자신들의 ‘어시책(御試策)’이라는 인쇄물이 직지심체요절보다 40여 년 앞선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인쇄출판문화의 원조 자리를 놓고 동아시아 삼국이 벌이는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원조 자리를 반드시 우리가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증적인 연구에 의해서 우리 문화재들이 원조가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면 흔쾌히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자세도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밝혀져야 할 진실이 현실의 역학관계에 따라 엉뚱하게 왜곡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인쇄출판문화가 세계 최고(最古)로 인정받고 있고 그 사실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서 손을 놓고 안심할 수는 없다.
문화·역사적 영토를 지키는 일은 실제 영토를 지키는 일 못지않게 힘들다. 다행히도 우리는 문화 영토 수호, 특히 인쇄출판문화 역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를 지켜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앞두고 있다. 내년 10월 개최되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가 그것이다. 인쇄출판문화의 종주국을 자처해 온 중국으로서는 찜찜한 기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전 세계 출판인들이 모여 책을 거래하는 장터의 중심에 판을 벌리고 우리 인쇄출판문화 전통을 정확히 알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내친 김에, 힘차면서도 아름다운 고구려 벽화 그림을 배경으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중국의 역사 왜곡 시도를 우리끼리 말로 백 번 비판하는 것보다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통해서 세계인들에게 책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문화적 자존심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가 갖는 여러 의미 가운데는 문화·역사적 영토 수호도 있다는 점을 새삼 지적하고 싶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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