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야세르 아라파트(75) 자치정부 수반의 사망에 대비해 권력이양 작업에 들어갔다. 프랑스 주재 팔레스타인 특사인 레알라 샤히드는 5일 "아라파트 수반은 혼수상태(coma)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숨쉬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AFP통신은 아라파트 수반이 뇌사상태(brain dead)라고 보도했다.아라파트 수반이 없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극심한 혼란을 겪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포스트 아라파트의 지위를 누가 차지하든 온건·급진 양 세력을 아우를 만한 정치적 기반을 가진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자치정부 수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을 겸임한 아라파트의 권력을 양분해 자치정부 수반은 아흐메드 쿠레이(67) 현 총리가, PLO 의장은 마흐무드 압바스(69) 전 총리가 나눠 갖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민의와는 거리가 먼 고육책이다. 아라파트가 눈에 보이지 않게 가지고 있던 급진세력과의 정치적 교감을 이들에게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회의론의 근거이다.
전문가들은 아라파트 이후 내부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이스라엘, 미국 등 서방과 외교적 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가 차기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의 요체로 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쿠레이 총리와 압바스 전 총리를 우선 순위로 꼽을 수 있다. 이 둘은 모두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가 아라파트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총리군(群)으로 내세웠던 인물이어서 국제사회의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적다는 게 강점이다. 특히 압바스 전 총리는 ‘아라파트 죽이기’에 나선 미국 정부가 신설된 초대 총리에 낙점했을 만큼 미국의 ‘신임’이 두텁다. 현재 PLO 집행위원회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4월 초대총리로 취임한 뒤 대 이스라엘 협상전략 등을 놓고 아라파트와 첨예하게 맞붙은 뒤 5개월만에 전격 사임했다. 당시 정계에서는 이를 두고 아라파트의 오른팔이자 2인자로 군림해 온 압바스가 아라파트와의 결별을 염두에 둔 수순이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문제는 이들이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60, 70년대 아라파트와 함께 국외를 떠돌면서 이스라엘 투쟁운동을 전개했다는 ‘망명그룹’으로서의 상징성만이 있을 뿐이다. 80년대 인티파다(봉기)를 통해 자생적으로 등장한 40대 젊은 급진세력들에게는 아웃사이더로 평가절하되고 있다. 특히 10년 전 자치정부 수립 이후 고위직을 독점하는 과정에서 여러 비리에도 연루돼 청산 대상으로까지 비난받고 있다.
망명그룹이 후계구도를 장악한 뒤 급진세력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최악의 경우 팔레스타인이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기반으로 하는 자치정부와 가자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무장세력군으로 쪼개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등 과격 무장세력의 주도로 팔레스타인이 노선투쟁에 휘말리고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런 배경에서다.
한편 아라파트 수반은 PLO 정치국장 파루크 카두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는 정치적 유언을 남겼다고 이스라엘 신문 마리브가 5일 보도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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