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달러짜리 PC를 미국에 수출하면서 현지에 직접 출자한 회사를 차렸다. 1998년 9월이었다. 이름은 이머신즈라고 지었다. 이머신즈 브랜드를 미국 시장에 뿌리내리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수출 방법은 두 가지다. 우리 브랜드, 즉 삼보 상표로 수출하거나 물건을 만든 뒤 최종 판매 회사 브랜드로 파는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이다. 현대자동차가 현대 상표를 붙여 미국 시장에 파는 게 앞의 예고 한국에서 만든 운동화가 나이키 상표로 미국에서 팔리는 게 후자에 속한다. 수출기업으로서는 당연히 전자가 더 바람직 하지만 자기 상표에 한정해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생산대수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가 499달러 PC로 성공을 거두자 미국의 유명 회사들이 대량제조를 의뢰해 왔다. 많은 고민을 했다. 끝까지 우리 상표를 지킬 지, 아니면 OEM 방식을 택해 판매량을 늘릴 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장고 끝에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왜냐하면 데스크톱 PC는 이미 성숙단계에 달해 수백만대를 생산하지 않고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힘든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지 법인인 이머신즈를 팔고 이머신즈 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도 PC를 공급키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 결과 우리 상표는 아니지만 삼보 PC가 미국 소비자 시장에서 최대의 점유율을 자랑하게 됐다. 주문이 밀려들자 우리는 99년 6월 중국 선양(瀋陽)과 멕시코 후아레스 등 해외 6곳에 공장을 지었다. 그때 만일 우리의 주력 제품이 데스크톱이 아니고 노트북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노트북은 성숙기가 아니라 성장기의 제품인 만큼 수량이 적어도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삼보는 우리 상표의 노트북을 수출하기 위해 애버라텍(Averatec)이라는 회사를 세우게 된다.
삼보는 창사 이래 한국 최대 PC메이커의 지위를 지켜왔다. 지난해에는 400만대의 PC를 생산했다. 특히 데스크톱PC는 삼보가 유일하게 수출한다. 노트북은 수출 회사가 몇 군데 있지만 금액으로 따지면 삼보가 월등히 앞선다. 나는 삼보가 없었다면 한국은 PC산업이 없는 나라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최근 삼보에는 두 가지 자랑거리가 있다. 하나는 루온이라는 올인원(All-In-One) 컴퓨터를 내놓은 것이다. 나는 평소 다음과 같은 제품을 개발하라고 강조해 왔다. 첫째, 물건이 너무 좋아 파는 사람이 동생이나 처남을 붙들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소비자가 그 제품을 보면 갖고 싶어 잠이 안 올 정도가 돼야 한다. 끝으로 경쟁회사가 그 제품을 보면 털썩 주저앉아야 된다. 나는 이런 제품이 바로 루온이라고 믿는다. 우선 디자인이 아주 예쁘다. 겉보기엔 모니터와 키보드 밖에 없다. 컴퓨터 본체가 몽땅 모니터의 기둥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TV와 오디오시스템 기능을 갖췄고 DVD와 카메라도 달려있다. ‘올인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게 다 들어있다. 반면 너덜너덜한 줄은 없다. 전력선 외에는 다른 줄을 모두 무선으로 대체했다. 또 매우 조용하다. PC가 시끄러운 건 열을 식히기 위한 선풍기가 들어 있기 때문인데 올인원은 아예 선풍기를 빼버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