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막바지로 치닫던 최근 며칠 동안 중국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이번 선거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미 대선에 대한 관심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았던 한국의 상황과는 크게 다르다.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최근 북미 관계 악화와 한반도 긴장 고조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에서 기인한 것이며 따라서 이번 선거가 어떤 결과로 끝나는가에 따라 남북 관계도 커다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중국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가 이후 중·미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현상은 1989년 천안문 사태와 냉전 체제 붕괴로 소련에 대한 봉쇄를 목표로 하였던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협력 관계가 약화된 이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마다 중국 문제가 중요 이슈로 등장하고 중국은 이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것과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92년 선거에서는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의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한 온건한 입장을 공격하고, 2000년 선거에서는 부시 현 대통령이 클린턴 정부가 주장하였던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협력을 비판하고 중국을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라고 주장하며 중국을 긴장시켰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번 미 대선에서는 중국 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지 않으면서 중국은 비교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01년 9·11 이후 미국의 대외 정책의 중점이 성장하는 중국이나 소련과 같은 군사대국에 대한 견제에서 반테러전쟁으로 이동하고 이를 위해서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공화당이나 민주당 사이에 큰 이견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행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고,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해서 미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03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현재 미·중 관계는 72년 닉슨의 방중 이후 가장 좋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의 증가도 중국이 미 대선에 냉정한 태도를 취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중국에서는 부시의 재선이 현재 안정적인 중미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반면 존 케리의 당선은 인권 문제, 무역 문제에서 중국에 대해 더욱 비판적인 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중국의 미 대선에 대한 판단은 이러한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보면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클린턴이나 부시 모두 경선 과정과 임기 초반에 중국에 대해 비판적인 정책 성향을 드러내었으나 점차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화시켰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앞으로도 미·중 관계가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발전할 수 있다는 보장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ㆍ중 관계의 불확실성은 올해 들어 다시 증가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우선 미국의 새 행정부가 반테러전쟁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국민의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 문제에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일 경우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과 무역마찰이 증가할 것이다. 또한 대만에서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차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와 방위공약도 미·중 관계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경제, 안보 등의 영역에서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추구하는 미·중 관계의 기본구도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한 미·중 관계 속에서 어떻게 양국과 전방위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킬 것인가가 한국 외교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남주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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