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를 코 앞에 두고도 미 대선의 향배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31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주요 접전지 중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우세를 보인 곳은 거의 없었다. 주별로도 조사가 엎치락뒤치락해 정확한 대세 흐름을 읽기도 어렵다.일일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현재 부시와 케리가 견고하게 확보하고 있는 선거인단이 각각 197명과 179명이라고 밝혔다. 접전지 중 부시쪽으로 기운 미주리(11명) 콜로라도(9명) 네바다(5명)의 선거인단 30명을 합하면 부시는 227명을 확보하고 있다.
케리는 3대 접전지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21명)를 비롯 미시간(17명) 오리건(7명) 뉴햄프셔(4명) 메인(4명)에서 선전, 이곳의 54명을 보탤 경우 현재 232명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 숫자 자체만은 의미가 없다. 당선에 필요한 270명에는 모자라기 때문이다.
플로리다(27명) 오하이오(20명) 미네소타(10명) 위스콘신(10명) 아이오와(7명) 뉴멕시코(5명) 등 남은 6개 접전주의 조합에 따라 승패는 얼마든지 갈릴 수 있다.
최대 선거인단이 걸린 플로리다와 오하이오를 한 후보가 독식한다면 승부는 의외로 간단하게 끝나게 된다. 나머지 4곳을 상대방에게 빼앗겨도 매직넘버 270을 넘을 수 있다.
오하이오 주의 경우 조그비 조사에선 케리가 4% 포인트, 메이슨딕슨 조사에선 부시가 2% 포인트 앞섰고, 지역 신문인 콜럼버스 디스패치 조사에선 동률을 이뤘다.
반면 플로리다는 조그비 조사에선 케리가 2% 포인트, 메이슨딕슨 조사에선 부시가 4%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플로리다와 오하이오를 부시와 케리가 양분할 때 케리는 2000년 대선 때 민주당이 승리했던 미네소타와 위스콘신을 지키지 않으면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오와 주와 뉴 멕시코에선 부시가 근소한 우세를 지키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많다. 부시는 이 두 주에서 승리하더라도 미네소타와 위스콘신 중 한 곳을 뺐지 못하면 백악관을 나와야 할 처지가 된다.
CNN과 USA 투데이, 갤럽의 공동 조사에선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주에선 케리가 각각 3,4% 포인트 차를 우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펜실베이니아에선 부시가 4% 포인트로 리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워싱턴 포스트 관측과는 차이를 보였다.
오사마 빈 라덴 변수가 판세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는 결국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 중 누가 더 많이 투표장에 나오느냐와 4~5%로 압축된 부동층이 어떤 비율로 나뉘느냐가 승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격전지 마지막날 유세 표정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31일(현지시간) 앞 다퉈 찾은 곳은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였다. 두 후보는 이 두 곳을 모두 상대방에게 내줄 경우 백악관행이 어렵게 된다는 점을 확인하듯 유세장을 돌며 막판 표몰이에 총력을 기울였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동생 젭 부시 주지사의 호위 속에 플로리다 주의 3곳을 돌며 미국의 안보를 책임질 적임자는 자신임을 집중 부각했다. 그는 마이애미의 유세장에서 스페인어와 영어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쿠바계 이민자들을 향해 "앞으로 4년 동안 자유의 선물이 쿠바 남녀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더 한층 박차를 가하겠다"고 외쳐 "비바 부시(부시 만세)"의 합창을 이끌어냈다. 부시 대통령은 "한치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면서 케리 후보는 입장 자주 바꾸기(flip-flop)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고 비꼬았다. 31일 밤 오하이오 신시내티에서 야간집회를 가진 부시 대통령은 1일 오하이오 각지를 돌며 유세한 뒤 텍사스주 크로포드 목장으로 돌아가 투표할 예정이다.
가톨릭 신자인 케리 후보는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가톨릭 미사와 흑인 침례교회 예배에 참석한 뒤 "우리는 이 나라의 상처를 치유하고 하나된 미국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뉴 햄프셔주 멘체스터 유세에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은 미국 사람들을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대통령을 뽑는 것"이라며 자신이 더 현명하게 미국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부시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의 테이프 방영과 관련한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과는 달리 케리 후보는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가 미국의 선거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는 데 분노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두 진영 모두 빈 라덴 테이프 방영이후 여론 지지에서 중요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흑색선전… 투표방해… ‘醜한 美’
"이건 정당활동이 아니라 거짓말, 속임수, 도둑질이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면 만사형통이란 말인가." 미 플로리다주 리언 카운티의 아이온 산초 선거관리관은 31일 "16년간 선거감독을 해왔지만, 이런 황당한 일들을 겪긴 처음"이라면서 부정으로 얼룩진 대선 선거전을 규탄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박빙의 접전을 펼치고 있는 플로리다 오하이오 등 이른바 격전주에선 어김없이 흑색선전, 투표방해행위 등 각종 선거 부정행위가 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벌어졌다.
산초 관리관이 근무 중인 리언 카운티에서는 최근 플로리다 주립대와 플로리다 A&M대, 알라추아 카운티의 플로리다대 등 대학생 4,000명이 자신도 모르게 공화당원으로 기록돼 주소마저 바뀌어진 채 등록됐다. 당원 등록 여부는 투표권 행사에 영향을 주지 않으나 주소가 바뀌어져 있으면 거주지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 지역 신문이 조사한 결과, 플로리다주 공화당이 고용한 선거운동조직이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투표율에 영향을 주기 위해 선거일정을 오도하는 시도도 빈발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앨러게니 카운티에선 지난 주 엉뚱하게 투표시간 연장을 알리는 전단이 행인들에게 배부되거나 가정에 우송됐다. 언뜻 보면 카운티 당국의 공문서처럼 보이는 이 전단에는 ‘투표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투표시간을 연장했으니 공화당원은 11월2일, 민주당원은 3일 투표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위스콘신주의 경우는 훨씬 황당한 전단이 뿌려졌다. ‘밀워키 흑인유권자 연맹’이라는 유령 단체의 이름으로 흑인 거주지에 배포된 이 전단에는 "올해 어떤 선거이든 한번 투표한 사람은 이번 대선에서 투표할 수 없으며, 이를 어길 경우 10년형에 처해지거나 자식들과 격리된다"는 무시무시한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오하이주의 레이크 카운티에선 "민주당과 전미 유색인종 지위향상협회(NAACP)를 통해 유권자 등록을 한 사람은 투표권이 박탈된다"는 내용의 가짜 선거위원회 문서가 유권자들에게 전달됐다
공화당측은 "너무나 명백한 거짓 정보를 공화당원을 사칭해 유포한 것을 보면 민주당 외곽 단체들이 흑인 유권자 투표참여를 높이기 위해 ‘분노 촉발 작전’을 쓴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측은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유권자들은 그렇게 단순치 않다"고 반박했다.
선거결과가 어떻든 과정이 깨끗하지 못했던 만큼 후유증 또한 만만찮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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