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이력서] IT계의 선구자 이용태 <34> 이머신즈의 성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의 이력서] IT계의 선구자 이용태 <34> 이머신즈의 성공

입력
2004.11.02 00:00
0 0

1997년 발생한 환란 사태는 우리에게 감내키 어려운 시련을 안겨줬다. 국내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미국과 유럽 시장도 성장이 둔화한 상태였다. 그러나 궁즉통(窮卽通)이라 했다. 삼보는 일대 결단을 내렸다. 세상 사람들이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해냈다. 98년 9월 나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주제 발표를 했다. 내 바로 다음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이 등장하게 돼 있었다. 청중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내가 아니라 게이츠를 보기 위해서지만 말이다.나는 그 자리에서 비장의 신 제품을 소개했다. 인사말에 이어 나는 곧바로 "지금 여러분에게 놀라운 뉴스를 전하려 한다. 모든 사람들이 꿈꿔 왔지만 아무도 이뤄내지 못한 큰 일을 삼보가 해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슬라이드를 보여줬다. 거기에는 새로운 컴퓨터 기능이 나열돼 있었다. 나는 우렁찬 목소리로 "이런 기능을 모두 갖춘 컴퓨터 ‘이머신즈’(e-Machines)를 단돈 499달러에 미국 시장에서 11월 1일부터 출시하겠다"고 했다. 청중은 열광했다. 고함과 휘파람과 박수 소리로 장내가 들끓었다.

나는 연단에서 내려오자 마자 기자들에게 포위됐다. 그리고 그날로 우리가 만든 PC의 새 모델인 이머신즈 뉴스가 전세계에 전파됐다. 11월이 돼 이 제품이 나오면서 PC업계에 선풍이 일기 시작했다. IBM을 제치고 에이서(ACER)를 밀어냈다. 애플과 게이트웨이(GateWay)를 뛰어 넘으면서 꾸준히 시장점유율을 높여갔다.

판매 9개월째인 99년 7월에는 미국 소비자시장(CM)에서 점유율 3위에 올랐다. 점유율이 문제가 아니었다. PC 시장 자체의 질서와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하던 팩커드벨이 문을 닫고 컴퓨터 업체의 왕자인 IBM이 미국 소비자시장에서 철수했다. 대만의 최강자인 에이서도 미국 시장을 포기했다.

충분히 예견된 대성공이었다. 그 배경을 설명하겠다. 컬러 TV는 미국에서 500 달러 밑으로 떨어지자 판매대수가 갑자기 늘어났다. 제품 가격이 500 달러 미만이 되면 기존 시장이 아닌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연 소득 3만 달러 이하의 중·저소득층이 살 수 있다. 또 그 정도 가격이면 이미 TV가 있는 가정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한 대쯤 더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은 VTR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PC도 500 달러 미만이 되면 새로운 시장이 생겨날 것이라는 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500 달러 미만의 PC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대표적인 예가 오라클과 썬마이크로시스템이다. 그들은 그러나 모든 기능을 갖춘 PC를 500 달러 밑으로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능을 대폭 축소한 500 달러 미만 PC를 만들고, 그 대신 강력한 서버에 매달아 쓸 수 있게 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이를 네트워크 PC라 부르면서 두 회사는 상당 기간 보급에 힘썼다.

두 회사는 이 방식이 성공하면 숙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쓰지 않아도 되고, 자기네 서버와 데이터베이스를 더욱 활용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그 대신 500 달러 미만 PC의 주인공은 삼보의 이머신즈가 차지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