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살겠다, 갈아 보자." 1956년 선거에서 자유당의 장기 집권에 맞서 민주당이 내건 유명한 구호이다. 그러자 자유당은 "갈아 봐야 소용없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워 동요하는 민심을 달래려고 노력했다.최근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면 엉뚱하게도 떠오르는 것이 50년대의 이 선거구호들이다. 그렇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그리고 지난 4월의 17대 총선에서 국민들은 그 동안의 낡은 정치에 분노하며 "못 살겠다, 갈아 보자"며 변화를 선택했다. 그러나 17대 국회와 정치권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구관이 명관"이 아니었는가 하는 참담한 생각까지 든다.
17대 국회와 정치권의 추락은 결국 이해찬 총리의 막말 정치와 한나라당의 국회 거부 사태로까지 발전하고 말았다. 이 총리 지적대로 한나라당의 최근 행각은 시대착오적이고 상식과 거리가 먼 색깔론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 이 총리의 발언을 이유로 한나라당이 국회를 공전시키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나 이 총리의 막말 정치는 이와는 또 다른 수준의 문제로서 이번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총리가 져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중진인 김부겸 의원이 잘 지적했듯이 한나라당은 한나라당이고, 총리는 총리답게 행동했어야 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번 사태의 핵심인 이 총리의 막말 정치는 이 총리의 그 동안의 행적과 스타일을 볼 때 돌발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이미 ‘예정된 사고’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총리가 최근 수구 언론과 한나라당에 대해 총리로서는 부적절한 막가파식 공격을 퍼붓고 나선 것은 정치적으로 계산된 것일지 모른다. 구체적으로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으로 상실한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여 4대 개혁 법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이 총리가 총대를 멘 것이라느니, 그 동안 전면에 나서 싸워 온 노무현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악역을 맡은 것이라느니, 차기 대권 입지를 위한 의도적 도발이라느니 하는 언론의 관측들은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원래 이 총리가 독선적이지 않은 정치인이었다면 이런 분석들이 설득력이 있겠지만 원래 독선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6월 이해찬 의원이 총리 후보로 부상했을 때 개인적으로 이 난에 쓴 ‘설상가상’이라는 칼럼(6월 15일자)은 이 총리의 스타일 때문에 이 같은 사태가 터질 것을 정확히 예측한 바 있다.
즉 노 대통령이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해 온 김혁규 총리 카드를 포기하는 대신 이해찬 의원을, 그것도 원내대표 경선에서 낙방한 지 1주일도 안 된 이 의원을 총리로 지명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국민들 입장에서는 "승냥이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격"이라는 주장을 폈던 것이다. 즉 이 총리는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군사 쿠데타 식으로 밀어붙여 공교육 붕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스타일도 문제다. 이 의원이 욕을 먹고 교육부 장관을 퇴진해야 했던 것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교사와 교수들을 척결해야 할 수구적인 개혁 대상으로 간주하며 갖가지 모욕을 주어 가면서 밀어붙인 업무 추진 방식 때문이다.
이 의원이 이런 식으로 총리직을 수행할 것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또 다른 문제는 노 대통령과의 ‘콤비’이다. 노 대통령은 주장이 강하고 전투적인 스타일이기 때문에 개혁적이면서도 부드럽고 덕이 있는 사람이 총리를 해야 서로 보완하면서 국정을 잘 이끌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노 대통령과 비슷한 스타일이라 총리로 적합할지 의문이다."
그리고 최근의 사태는 다섯 달 전에 지적한 걱정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총리가 앞으로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독선적인 스타일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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