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훨씬 저쪽의 일이다. 바다 빛처럼 파란 백 원짜리 종이돈이 우리에게 큰 돈으로 여겨지던 시절, 모처럼 방문한 친척으로부터 그런 백원 짜리 한 장을 용돈으로 받으면 그 즉시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그런 시절 시골마을로 큰 돈을 들고 다닌 사람은 소장수였다. 그들은 백 원짜리 종이돈을 100장씩 묶은 다발을 품속 자루에 넣고 다녔다. 큰 황소 값이 15만원쯤 하던 때였으니, 그런 황소 몇 마리를 사 들이자면 품속의 자루도 두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마을에서는 소장수를 상대로 살인사건이 나기도 하고, 소장수 역시 먼 곳으로 소를 사러 나갈 땐 옆에 힘 좋은 장정 한 사람을 보디가드처럼 데리고 다녔다.
그런 어느날, 형의 대학등록금 때문에 소장수를 불렀다. 소 한마리를 마당으로 끌어내 흥정하고 난 다음, 뜻밖에도 소장수가 꺼내 민 것은 나로서는 그때 처음 구경하는 만원짜리 여남은 장이었다. 그걸 받고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 저 산처럼 큰 소가 고작 이거 열 다섯 장이라니. 참 허무하네."
지금은 작고도 작아진 만원짜리가 처음 나왔을 땐 그 정도의 가치를 발휘했던 것이다.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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