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를 주도한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1년여 만에, 그것도 미 대통령 선거를 3일 앞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알 자지라 방송에 보낸 비데오 테이프에서 그는 9·11 테러 지시를 처음으로 시인하면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비난했다.발언 내용은 대단히 애매모호하다.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의 의미를 오도하고 있다", "미국인의 안전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라 미국의 정책, 미국인의 손에 달려 있다"는 등이다. 한때 추가 테러 위협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미 당국은 테러 경계 수준을 끌어 올리지 않았다.
한동안 잊혀졌던 그의 등장만으로 미 대선 판세가 흔들리고 있다. 뉴스위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민주당 존 케리 후보와 팽팽한 접전을 벌여 온 부시 대통령의 상대적 우세가 뚜렷해졌다. 빈 라덴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조사에서 ‘테러리즘에 잘 대응할 수 있는 후보’로 56%가 부시 대통령을, 37%가 케리 후보를 꼽은 점에서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두고 음모론이 무성하다. 부시 대통령측이 빈 라덴을 직접 조종할 수는 없더라도 행동양식 분석틀이 있다면 예상된 반응을 끌어낼 모종의 자극을 가할 수는 있었으리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음모론에 기대기 전에 우선 그의 말에서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읽어 보자.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그가 언급한 ‘조국’과 ‘부패한 아랍 정부들’이 실마리다. 중동지역의 질서를 흔들고, 이슬람 원리주의와 반미주의를 토대로 새로운 ‘이슬람제국’의 건설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구상이라면 미국과의 대결은 예각일수록 좋다. 9·11 테러가 미국의 군사행동을 불렀듯, 부시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을 높인 그의 등장은 ‘영상 테러’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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