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이 결정되기까지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예측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제각각이다. 조사 기관에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앞선 것으로 나오기도 하고, 케리 민주당 후보가 앞섰다고도 한다. 선거가 이렇게 가까워왔는데 왜 판세를 점치지 못 하는 걸까? 여론조사가 잘못된 것일까?부시와 케리 후보는 계속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지지율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지율의 차이라는 것이 쉽게 표시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하다. 그래서 여론 조사 결과로 나온 수치를 표본오차까지 감안해서 보게 되면 누가 앞서고 누가 뒤진다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론조사를 통해서 지지율의 변화 추이를 알기 위해서 ‘트래킹 폴(tracking poll)’이라는 기법을 많이 쓴다. 기존의 1회성 여론조사를 몇 번 모아도 실제로 각각의 표본이 독립적이기 때문에 연속성이 없다는 결함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언론에서 편의상 ‘지지율 변화’라는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변화라기보다는 각각의 조사에서 나타난 수치를 연결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트래킹 폴(tracking poll)’ 방식에서는 하나의 표본을 가지고 여러 번 여론조사를 하게 된다. 1,000명의 표본이 있다면 그 표본을 가지고 몇 번씩 계속 조사를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사람들에게 여러 번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면 습관적으로 일률적인 대답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1,000명 중에서 3분의 1 정도를 새로 ‘물갈이’한다. 이렇게 해도 정확한 여론 조사를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민심의 변화 추이라는 것은 따라 잡기가 어렵다. 트래킹 폴을 통해서 잡힌 여론이라는 것이 과연 ‘변화’인지 아니면 여러 조사의 ‘평균’인지가 모호하게 된다. 정말 여론이 변화한 것인지 개별 조사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오차인지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부시와 케리 사이에서 각종 여론조사들이 제각각의 결과를 내놓고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휴대전화만 사용하는 유권자도 전체 국민의 5퍼센트나 되기 때문에 이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점도 있다. 집으로 거는 전화 조사에 이들의 의견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선거 시스템 상, 법적으로 유권자라고 해서 다 투표를 하게 되지는 않는다. 투표를 위해서 관공서가 문을 연 평일에 하루 날을 잡아서 등록을 해야 하고, 또 투표 당일날 투표소로 가야 한다. 유권자이지만 투표를 하지 않을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의 의견을 가지고는 실제로 선거의 판세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유권자 중에서 실제로 투표를 할 사람들을 제대로 가려내야 지지도 분석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 두 후보의 지지율 차이가 표본오차율 안에 있다면 무승부다. 무승부로 판가름 난 결과를 가지고 억지로 누가 이기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무리를 하다 보면 잘못 된 예측을 하게 된다.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는 최고 인기 뉴스 아이템이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가 이기고 지는지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책은 제쳐두고 이기고 지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게 된다. 여론조사의 대부라고 불리는 죠지 갤럽이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뉴스가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뉴스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는 뉴스이다. 여론조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알려 준다."
부시와 케리 사이에서 여론조사는 힘들게 헤매고 있다. 며칠 후면 다 알게 될 결과지만, 미리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 많은 공과 돈을 들이고 있다. 여론 조사의 결과를 가지고는 승패를 점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마지막 법원의 판결에는 깨끗이 승복함으로써 결정에 종지부를 찍은 2000년 대통령 선거가 미국의 정치 문화다. 우리 나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강미은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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