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두렵습니다. 그런데 히말라야가 왜 한국인에게 쉽게 문을 열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히말라야의 8,000m가 넘는 14개봉을 모두 정복한 산악 영웅들이 서울에 모였다.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마르티니(55), 폴란드의 크지스토프 비엘리키(54) 등 2명이 엄홍길(44) 원정대장과 함께 28일 도봉산에 올랐다. 8,000m 14좌 완등자는 전 세계를 통틀어 모두 10명뿐. 엄 대장을 포함해 박영석, 한왕용 등 한국인 3명이 포함돼 있다.
30일 도착하는 스위스의 에라르 로레탕을 포함해 세계적 등반가들이 한국에서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처음이다. 엄 대장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 이룬 14좌 완등이기에 이들만이 갖는 공감대는 남다르다"며 "작년 스페인 모임에서 히말라야가 유독 편애하는 한국 산사나이들의 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오전 9시 30분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 쌍룡사 주차장에서 시작된 산행은 망월사까지 왕복 3시간의 간단한 코스. 단풍이 절정을 이룬 산길을 오르며 마리티니, 비엘리키 모두 색색의 빛의 잔치에 탄성을 질러댔다. 10분 가량 오르자 조그마한 터가 나타났다. 엄 대장이 "이곳이 내가 4년 전까지 42년을 살던 집이 있던 곳"이라고 하자 둘 다 놀라는 표정이었다. 엄 대장은 "이리 이사 온 게 내가 세 살 때로 그 이후 산은 내 놀이터였고 학교였고 내 삶의 전부였다"며 "지금의 나를 만든 것도 다 이러한 환경 덕분이다"고 말했다.
엄 대장이 암벽 타기 연습을 했다는 두꺼비 바위를 지나 목적지인 망월사에 올라 모두들 만추의 단풍을 완상했다. "산세가 폴란드와 비슷해 친숙하다"던 비엘리키는 "산행이 어렵지 않았지만 올라와 보니 엄 대장이 산을 왜 잘 타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1997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한 그는 2년 전 실패했던 K2 겨울등반을 내년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마르티니는 산행 내내 "우기는 언제냐, 겨울에 눈은 얼마나 오느냐, 야생동물은 어떤 것들이 사느냐" 는 등 끊임없이 질문을 하더니 "대도시 근교에 이렇게 좋은 산이 있다니 서울 사람들은 축복 받은 이들"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31일 전남 영암 월출산에서 열리는 아시안등반경기위원회(ACC) 선수권대회를 참관하고 내달 1일 서울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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