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릴 곳 묻는 장애아동에 승객들은 외면며칠 전 집에 가는 버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버스 맨 뒷자리에는 언어능력이 조금 떨어져 보이는 장애아동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호자 없이 시내버스를 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서로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아이가 내리려고 조심조심 뒷문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흔들려 아이가 비틀대자 행여나 자기 몸에 닿을까 한껏 몸을 움츠리며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확실치 않은 아이가 이제는 뒷문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아줌마, 여기가 ○○아파트죠?" 아줌마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이번에는 한 아가씨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내리면 ○○아파트 맞죠?" 힘겹게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물었지만 여자는 창 밖을 쳐다볼 뿐 끝내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속상했던 건 아무렇지 않은 듯한, 오히려 이런 일에 익숙한 듯한 아이의 표정이었습니다. 왜 외면당해야 하는지를 깨닫기도 전에 이미 거기에 익숙해진 듯이 말이죠. 장애인에서 장애우로 이름을 바꾸었어도 사람들 마음속은 아직도 장애인을 기피하고 싶은 존재로 여기는 듯해 씁쓸했습니다. 지하철역에 더 많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은 우리 마음속에 그려진 장애인의 이미지를 지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조윤진·서울 강서구 공항동
■어린이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점심시간에 사무실 인근 건널목에서 초등학교 1, 2년 또래 여학생을 가끔 만난다.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하고 예쁘게 인사를 한다. 유심히 보니 다른 어른들한테도 똑같이 한다. 무덤덤한 분도 있고, 당황하는 분도 있고, "그래, 착하구나"하고 칭찬하는 분도 보인다. 모두 다 따뜻한 말로 칭찬을 해 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다.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인 김수녕 선수가 있기까지 무엇보다도 초등학교 시절 학교 선생님의 칭찬이 결정적이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의 경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이름을 처음으로 썼을 때 아버지의 그 흡족한 표정 외엔 어린 시절 누가 칭찬을 해 주었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루소는 "한 포기의 풀이 싱싱하게 자라려면 따스한 햇볕이 필요하듯이 한 인간이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칭찬이라는 햇볕이 필요하다"고 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노청한·서울남부보호관찰소장
■아직도 ‘개울세차’하는 사람이
지난 일요일에 부모님과 함께 성묘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개울에는 이상하게도 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이 내려오는 곳을 보니 한 아주머니가 세차를 하고 있었다.
요즘은 자기 집 앞에서 세차하는 것도 환경오염 때문에 문제가 된다. 흐르는 개울가에서 하는 세차가 환경오염을 가중시킬 것은 당연하다. 그 아주머니도 잘못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수풀에 가려 안 보이는 곳에서 세차를 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 법을 만들었으니 스스로를 위해 지켜야 한다.
이현주·서울 도봉구 창5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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