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한 마디 ‘화두’를 던지겠다며 이런 말을 했다. "많은 사람은 지금까지 기업하기 좋은 나라, 기업 잘되는 나라가 국민들이 잘되는 것과 관계가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의 몫이 아니라 기존의 우리 정치와 경제를 이끌어가던 지도층에서 기업이 잘되면 우리 모두가 잘 산다는 확신을 가지도록 여건을 마련하는데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국민이 잘 사는 나라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은 잘돼 많은 수익을 올렸지만, 그것이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았으며, 그렇게 된 데는 정치와 경제 지도층의 책임이 크다는 이야기다. 노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기본인식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런 대통령이 취임 후 해외 순방 중에 이런 말을 했다. "밖에 나와 보니 나라 경제가 기업 따로 정부 따로가 아니고 함께 손잡고 뛰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역시 외국에 나와보니 ‘기업이 바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한국 대표는 대통령이 아닌 기업이라고까지 강조했다. 기업, 기업인에 대한 더할 수 없는 예찬이다.
기업인들은 이 말을 믿고 싶었다. 대통령의 언급이 단지 해외 순방에서 느낀 ‘감상’에 머물지 말 것을 기대했다. 어느 기업의 경영자는 "밖에 나간 경험이 드문 대통령이 흥분해서 한 말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정색하며 말했다. 노 대통령이 인도 방문 때 "길가에 붙어있는 기업 홍보 판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고 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마친 후 국무회외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업이 나라다, 한국상품이 국가대표다 등 순방 중 발언에 대해 대통령 본심이냐, 생각이 바뀐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기업이 소중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 새삼스럽게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말을 아껴야 한다. 말 한 마디가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조금 오래된 수치지만 8월 말 한나라당의 발표에 따르면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거나 언론이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 보도한 것이 취임이후 어림잡아 55번이나 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살림살이는 외화위기 직후보다 더 어렵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도 안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는가.
우리 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의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도무지 앞을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 동안 기업인들에게 무엇이 불확실하냐,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선 기업인들은 무엇이 불확실한가를 모르는 것이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는 반응이었다. 대통령 한방 주치의인 신현대 경희대 교수는 "노 대통령은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는 등 타고난 건강 체질이므로 조신(操身)보다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 즉 조심(操心)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측근들도 마찬가지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시장경제에 대한 의구심을 말했다가 외국에 나가서는 정 반대 발언을 한 것이나,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나 김병준 정책실장 등이 왜 우리가 좌파냐는 항변은 경제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는 맞지가 않는다. 기업들이 왜 투자를 꺼리고, 가계는 지갑 열기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비법은 없을 것이다. 그럴수록 정부는 정직해야 한다. 국민에게 어려운 사정을 솔직히 고백하고 함께 난관을 극복하자고 호소해야 한다. 국민들이 마음 편히 먹고 살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일차적 의무다.
이상호 심의실 부실장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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