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세르 아라파트(75)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최근 위독한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지자 세계는 ‘아라파트 사후’ 전개될 중동 정세의 변화 양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치정부의 한 각료는 27일 "심각한 위통과 감기증세 등에 시달리고 있는 아라파트의 병세는 ‘매우 매우’ 위중하다"고 밝혔다.AP통신도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자치정부 청사에 머물고 있는 아라파트가 의식을 잃을 정도로 위독해 요르단 주치의 등 외국 의료진을 불렀으며 자치정부가 사후를 대비한 ‘3인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아라파트의 부인 수하 여사가 급거 귀국하자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사정이 이렇자 아라파트 수반이 28일 "나는 괜찮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발표하고, 측근들이 그의 건강 회복을 강조했으나 위독설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라파트 수반은 조만간 라말라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40년간 팔레스타인 민족을 이끌며 중동정세의 균형추 역할을 했던 그의 유고는 평화 보다는 갈등 확산의 계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우선 그가 사라질 경우 팔레스타인 내 온건파와 강경파간 권력 투쟁이 불가피하다. 아흐메드 쿠레이 현 총리,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 요르단강 서안지구 파타 사무총장인 마르완 바르구티 등 자치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온건파와 무장세력 하마드 등 강경파간 대립이 그것이다. 특히 새 지도자가 등장하더라도 아라파트처럼 반대세력의 ‘승복’을 이끌어내기에는 힘이 부칠 것이 확실해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안개 속을 헤맬 공산이 크다. 외신들은 대중적 지지도가 높은 40대 지도자인 바르구티의 행보, 자치정부의 영향력이 미약한 가자지구 분위기 등을 팔레스타인 미래를 결정할 주요 변수로 꼽고 있다.
과격 세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상황은 곧 이-팔 갈등을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 등 과격세력은 대중적 지지 기반을 넓힌다는 미명하에 테러 공세를 강화할 수 있어 양측간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이 심화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 이집트 시리아 등 이해당사국들이 팔레스타인 특정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중동정세의 새 판이 짜여질 수도 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