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경회루는 조선 초에 세워진 아름다운 누각이다. 호젓한 연못 가운데 나무기둥과 돌기둥, 겹처마, 거대한 팔작 기와지붕 등을 드리운 의젓한 자태가 왕궁의 권위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국에서 가장 큰 누각건물이며 국보 224호다. ‘경회루가 대중음식점인가.’ 지난달 13일자 ‘시민의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500여명이 참석한 국제검사협회 서울총회 만찬회가 경복궁 경회루 앞에서 열렸는데, 음주와 흡연, 궁내에서 금지된 불을 이용한 조리 등으로 문화재 손상의 위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검찰청이 ‘문화재 선양과 국익을 위한 행사였다’는 사과성 해명도 냈지만, 궁궐 활용의 원칙부재를 꼬집은 예리한 기사였다. ‘검사들이 아직도 힘이 세구나’ 하는 속된 생각과 ‘왜 하필 검사들이었나’ 하는 씁쓸한 느낌도 스쳐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사는 잊고 있던 부분을 떠올려 주었다. 경회루는 본디 외국사신을 위한 연회 등 국가의례용 건물이다. 권력기관에 특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면, 또 문화재를 충분히 보호한다면, 경회루를 널리 사용하는 것이 옳다. 문제는 원칙이다.
■ 대검 행사가 자극이 되었는지, 문화재청이 경회루를 시범 삼아 목조문화재 보존정책을 바꾸기로 했다. 내년부터 차단정책 대신 사람 손을 타게 하는 접근정책을 쓰기로 한 것이다. 최근 준비작업으로 누(樓)마루 바닥 길들이기 행사를 벌였다. 거칠어진 넓은 마루를 쓸고 걸레질했다. 인터넷 예약을 통해 유료 관람을 허가한다니, 누각에 올라 인왕산을 바라볼 날도 머지 않았다. 5·16 군사 쿠데타 후 40여년간 접근이 금지됐던 공간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3년 전 ‘경복궁 담도 헐었으면’이라는 칼럼을 썼다가, 항의 이메일을 많이 받았다. 험악한 글도 많아서 우리 사회의 문화재 사랑도 지독하구나 하고 절감했다. '담 높이를 아주 낮추거나, 안이 훤히 보이는 철책·목책 등으로 바꾸고 거기에 나무를 심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600년 고도(古都)다운 고궁의 우아하고 장엄한 기운과 기상이 온 도시에 뻗치고 스며들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항의 받을 각오로, 이 기회에 경복궁 담 타령을 되풀이 해 본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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