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5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신행정수도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두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첫째는 ‘헌재의 결론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국가균형발전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여권에서는 국민투표나 개헌을 통한 행정수도 이전을 강행하자는 목소리는 잦아들고 대신 네 가지 구체적 대안들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청와대와 국회, 대법원 등을 제외하고 모든 행정 부처를 충청권으로 이전해 행정특별시를 건설하는 방안이다.
헌재가 수도의 개념을 ‘국회와 대통령 등 최고헌법기관이 있는 곳’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은 행정 부처를 충청권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총리실 뿐 아니라 부총리·장관이 책임을 맡는 19개 부처가 모두 이전 대상이다. 청와대 비서실·경호실과 감사원 등 대통령 직속 기구 10여 개가 잔류하지만 당초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발표했던 73개 중앙행정기관 이전안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방안은 행정수도에 버금가는 효과를 거두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권의 한 인사는 "이원집정부제도 아닌데 청와대만 따로 남을 경우 대통령의 국정 조정 기능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과연 헌재 결정을 수용한 것인지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핵심 경제 부처를 남기고 다수의 행정 부처를 옮기는 방안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수도의 상징성을 유지하면서 서울이 ‘경제 수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재경부 등을 잔류시킨다는 주장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외국 대사관들이 이전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외교통상부는 서울에 남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교육·과학기술·통일·법무·국방·행정자치부 등 15개 가량의 부처를 옮기는 방안이 추진될 수 있다. 이는 헌재 결정을 따르면서도 충청권의 상실감을 상쇄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전 대상 부처 선정 기준 등을 놓고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특별법 제정을 통한 행정특별시 추진 방안이 어려울 경우 ‘과천청사단지’와 같은 행정타운을 건설하는 쪽으로 우회할 수도 있다. 과학기술 및 교육 관련 기관을 중심으로 6~7개 행정 부처를 이전하는 방안이다. 한나라당이 제시하는 ‘과학기술 행정도시’와 유사하지만 여권에서는 소수 인사들만 거론하는 대안이다. 헌재 결정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방안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자칫 행정타운과 베드타운만 갖춘 썰렁한 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
어중간한 행정도시보다는 공주·연기 부근을 ‘기업도시’나 ‘미래형 혁신도시’로 육성하는 게 더 낫다는 주장이 있다. 혁신도시론은 공기업을 비롯한 수십 개의 수도권 공공기관을 충청권으로 옮기고 거기에 연관 기업 및 연구소 등을 입주시키자는 것이다. 기업도시론은 상당수 기업들을 이전시켜 특화된 산업단지를 갖춘 신도시를 만들자는 것이다. 실속 있는 발전 전략을 찾자는 취지이지만 행정수도 이전 무산에 따른 충청권의 실망감을 누그러뜨리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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