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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베갯속을 채우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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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베갯속을 채우던 날

입력
2004.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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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맘때쯤일 것이다. 집집마다 베갯잇은 자주 갈아도 베갯속은 일년에 한번 벼 방아를 찧고 난 다음 갈아 넣는다. 방아를 찧을 때 처음 나오는 굵은 왕겨로 베갯속을 채우는 것이다.물론 특별한 것으로 채우는 베갯속도 있다. 간난 아기들의 베개는 가는 좁쌀로 채우거나 수(壽)를 길게 하라고 수수를 넣고, 할아버지의 베개는 주무시면서도 대숲소리를 들으시라고 바싹 마른 댓잎이거나 메밀껍질을 넣어드린다.

별다르게 국화 베개로 잠 사치를 하려 드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막 피어난 꽃을 따서 말려야 한다는 점에서 어른들은 오히려 그 호사를 하질(下質)로 보았다. 베개의 풍류에도 나름의 격이 있는 법이다.

가장 무난한 것이 왕겨인데, 고등학교 때까지는 친구 어머니의 특별한 부탁으로 자전거 뒤에 왕겨 포대를 싣고 이 집 저 집 나누어드리기도 했다. 시내 이불집에서 파는 베갯속이 아무리 좋아도 왕겨를 채운 것만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집 베개는 모두 솜 같은 것이 들어 있다. 고향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도 이젠 만들기가 귀찮아서 왕겨 베개를 쓰지 않으신다. 세월 가며 달라지는 것들이 참 많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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