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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IT계의 선구자 이용태 <29> 컴퓨터랜드 거래서 배운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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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IT계의 선구자 이용태 <29> 컴퓨터랜드 거래서 배운 점

입력
2004.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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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든 탑' 조그만 실수로 흔들릴 뻔나는 샴페인을 터뜨렸다. 미국의 컴퓨터랜드가 삼보 제품을 사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촐한 자축파티를 열었다. 1986년 초여름이었다.

나는 컴퓨터랜드 대표에게 수 많은 회사 중에서 왜 삼보를 택했는지 물어 보았다. 그는 "삼보 보다 휠씬 규모가 큰 회사는 널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삼보 엔지니어들의 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어떤 기능을 보강하라든지 수정하라고 주문하면 일주일 내 회답이 왔다. 한 두번이 아니고 여러 차례에 걸쳐 여느 경쟁자 보다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대응했다. 디자인의 완성도나 품질도 다른 제품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우리가 삼보를 택한 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나는 개발 책임자인 강진구 부사장을 불러 크게 칭찬했다. 이렇게 해서 삼보는 본격적으로 미국 수출 길에 나섰다.

그러나 이 사업은 1년도 채 못 가 시련을 맞았다. 이듬해 4월 컴퓨터랜드의 최대 공급 업체인 IBM이 불평을 토해냈다. IBM과 같은 성능의 제품을 더 싸게 팔면 컴퓨터랜드와의 거래를 아예 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강자의 횡포 앞에 약자인 우리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랜드와 거래를 하는 동안 삼보는 큰 교훈을 얻었다. 하루는 컴퓨터랜드 본사에서 내게 불평을 해댔다. 고장 난 제품을 들고 와 대응이 너무 늦다고 지적했다. 나는 뭐가 문제인지 직접 들여다 봤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대수롭지 않은 하자였다. 영업 파트에서 제조 부문에 제때 알려주기만 했어도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컴퓨터랜드에 들렀을 때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컴퓨터랜드는 전기공급장치에 문제가 있어 고객 불평이 많다고 했다. 그때 마침 강진구 부사장도 미국에 출장을 와 있었다. 그는 이에 관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강 부사장을 붙들고 "만사 제쳐 놓고 이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다그쳤다. 그는 여기 저기를 살펴보더니 "기술적으로 볼 때 매우 간단한 실수"라고 말했다. 조그만 실수 때문에 거래처에서 난리가 난 셈이다.

나는 기가 막혔다. 그래서 영업과 제조를 따로 맡은 양(兩)사장 제도를 버리고 전 회사가 한 개의 유기체로 관리될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했다. 86년 겨울에는 또 하나의 큰 경사가 생겼다. 바로 엡손(EPSON)과의 기술협력이다. 엡손은 PC용 프린터 분야에서 세계 최고였다. 이 회사는 한국의 PC산업이 뜨기 시작하자 시장 개척을 위해 협력 회사를 찾아 나섰다. 조사단은 한국의 이름난 전자 회사들을 모조리 둘러본 뒤 삼보를 찾아왔다. 그리곤 대기업들은 제쳐 놓고 ‘중소기업’인 삼보를 선정했다. 그래서 삼보는 한국 시장에서 엡손의 독점 공급권을 갖게 됐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PC를 쓰는 사람 거의 대부분은 프린터를 사게 돼 있다. 예상대로 엡손 프린터는 한국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우리의 매상고는 하루가 다르게 크게 증가했다. 우리는 엡손 프린터를 경쟁 회사에도 공급했다. 이처럼 삼보가 초기에 자리를 잡는데 엡손은 큰 도움을 주었다. 그때 엡손의 결정은 참으로 현명했다. 만약 특정 대기업에 프린터 공급권을 주었다면 경쟁 대기업들은 엡손을 외면했을 가능성이 높다. 삼보를 택하지 않았다면 엡손의 매출액도 줄어들었을 게 틀림없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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