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 장덕동에 있는 현대·기아 연구개발본부내 자동차 수밀시험장. 아스팔트 도로에 물을 뿌려 빗길 상황과 동일하게 만든 시험장에 세워진 ‘쏘나타’에 올라타자 전문 드라이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속 80㎞로 속도를 높였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자동차가 오른쪽으로 급히 돌면서 미끄러지려는 순간 차량 뒤쪽에서 무언가가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차량 뒷부분이 왼쪽으로 움직였다. 다시 차가 왼쪽으로 기우는 듯 하자 이번에는 뒷부분이 오른쪽으로 돌았고, 이내 쏘나타는 똑바로 자세를 잡았다.현대차 관계자는 "차량 각 부분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자동차가 미끄러지려는 순간을 미리 감지하고 각 바퀴를 선별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차량자세제어장치’(VDC·Vehicle Dynamic Control)"라며 "앞으로는 브레이크잠김방지장치(ABS)를 대신해 자동차 안전의 기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 단위의 활동이 늘면서 자동차 안전장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ABS와 에어백 정도에 머물렀던 자동차 안전 장치들이 정보기술(IT)의 발달에 힘입어 사고를 미리 감지해 알려주고 탑승자를 보호하는 최첨단 시스템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미 이 같은 장치를 장착한 자동차가 출시되고 있어 ‘사고 없는 자동차’도 더 이상 꿈이 아닌 세상이 됐다.
가장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자동차 안전 장치는 바로 VDC. 눈길이나 빗길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꿈의 제동장치’로 전자식주행안전시스템(ESP·Electronic Stability Program)이라고도 불린다. 이미 유럽에서는 보급률이 30%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에쿠스에 이어 쏘나타 고급 모델 등에 기본사양으로 장착되기 시작했다. 현대모비스가 독일 보쉬와기술 제휴로 개발, 현대차에 납품하고 있고 만도도 최첨단 ESP 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닛산자동차는 2005년형 인피니티 FX 모델에 ‘차선이탈경보장치’(Lane-Departure Warning System)를 장착할 예정이다. 백미러의 앞쪽에 설치된 카메라로 전방 차선을 감시하다 자동차가 차선을 벗어날 경우 운전자에게 경고음을 보내는 장치다.
앞차와의 거리가 지나치게 좁혀질 경우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 ‘크루즈콘트롤’(Cruise Control)도 점점 확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2001년 3개 모델에 불과했던 크루즈콘트롤 장착 차량이 최근에는 24개 모델로 증가했다.
이밖에도 운전자 체형과 운전습관까지 기억해 시트 및 핸들 높이 등을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운전자 정보 시스템’(DIS·Driver Information System), 차량 주행에 필요한 정보를 운전자의 시야 정면에 3차원적으로 표시해주는 ‘전방표시장치’(HUD·Head Up Display), 밤에 운전자 가시거리 밖의 앞쪽 물체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감지·표시하는 ‘나이트비전’(Night Vision) 등도 이미 외국 프리미엄 자동차에서는 일반화한 장치다. 우리나라에서도 현대모비스와 만도 등이 관련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어 이르면 내년쯤 이들 장치가 장착된 신차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사노프 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는 자동차의 측면과 정면에 부착된 작은 카메라를 통해 장애물을 감지한 뒤 운전자가 충돌을 피하고, 브레이크를 신속히 밟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충돌방지시스템’도 개발하고 있다. 이 장치는 경우에 따라서는 운전대를 작동시키거나 안전벨트 등도 자동으로 조여 준다.
업계 관계자는 "베이비붐 세대가 자동차 구매의 주고객층이 되면서 안전성이 자동차 구매의 중요한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단순히 위험 상황만 알려줄 경우 운전자가 당황할 수 있어 아예 위험 상황에서 자동차가 자동으로 제어되는 기술까지 개발되고 있어 앞으로 자동차 안전성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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