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김제의 넓은 들을 지나며 어린시절 생각을 했다. 대관령 산촌에서 자란 나는 이 세상 마을 모두가 우리 같은 산촌인 줄 알았고, 논들도 모두 산 속에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줄 알았다.호남평야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는 아직 이앙기가 나오기 전이어서 일일이 사람 손으로 모를 심던 시절인데, 그리고 모는 늦봄과 초여름 사이 열흘 안에 모든 일을 다 끝내야 하는데, 어떻게 열흘 안에 저 넓은 들에 모를 다 심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궁금했다. 또 하나 쓸데없이 궁금했던 것은 저 넓은 들의 논들이 모두 이 논이 저 논 같고, 저 논이 이 논 같은데 그 가운데 어떻게 자기 논을 헷갈리지 않고 잘 찾아갈까 하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하자 김제의 어떤 분이 자기도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가느라 처음 강원도 땅을 밟았는데, 큰 산도 있지만 야트막한 산들도 올망졸망 끝없이 펼쳐져 이 산이 저 산 같고 저 산이 이 산 같아 산 주인들 사이에도 어느 것이 자기 산인지 헷갈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더라고 했다. 우리가 서로 사정을 모르면 이런 정다운 걱정을 하는 것이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