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문화 통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은 유럽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각국 정부들은 유럽 국가들 사이의 투쟁을 다루면서 기존 교과서의 악의와 편견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루드거 퀸하르트 유럽통합연구센터 소장)"동북아 문화공동체는 구체적인 문화사상(事象)을 공유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근^현대사상에 생긴 전쟁, 식민지 지배 등 고통스런 사건의 기억을 공유하고 공통의 역사인식을 만들려는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다카하시 데츠야 도쿄대 교수)
인문사회연구회가 주최하고 통일연구원이 주관하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정책 연구’ 국제학술회의가 25일 오전 10시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다. 쉬워 보이면서도 가닥 잡기 어려운 한^중^일 동북아 3국의 문화협력 및 지역공동체 가능성을 짚어보는 자리다. 특히 ‘동북아시대’에 공감하면서도 근^현대사는 물론 고대사를 둘러싸고 갈등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형편이어서 이번 회의의 의미가 더욱 새롭다.
기조연설자로 참석하는 퀸하르트 소장은 미리 공개한 ‘문화공동체 형성:유럽-문화적 소통의 통일구축’ 발표문에서 "지금까지 유럽에서 성공적인 문화공동체 구축활동은 도시들간의 자매결연, 교환학생 프로그램, 문화관광사업 등 기능적인 것들"이라며 "독일과 폴란드, 또 독일과 러시아 역사교과서 편찬위원회가 처음 시작한 공통의 역사교과서 쓰기 작업은 이 가운데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에 출발부터 지나친 기대를 걸지 말며, 다원적인 문화소통의 과정을 찾고, 고교생 수필대회 같은 비정치적인 행사를 다양하게 만들 것 등을 제안했다.
와타나베 히로시 일본 도쿄대 부총장은 ‘동북아시아 문화공동체:가능성을 검진한다’는 기조연설에서 아시아주의적 단결, 서구화에 기초한 공동체형성 등 동북아 공동체의 미래상을 검토한 뒤,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처럼) 서양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모방하지 않고, 거기에서도 배워 상호의 문화를 수용하고 교류할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사회과학원 루신 부원장도 ‘화(和)사상으로 국민상호간의 이해를 촉진한다’는 기조연설에서 "상대방을 경쟁상대나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한다면 교류와 대화가 어려울 것"이라며 "협소하고 폐쇄된 태도를 극복하고 맹목적인 자문화 중심주의를 방지하면서, 특히 어떻게 자신과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지를 배우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오후에 열릴 두 차례 회의 중 ‘동북아문화공동체를 위한 각국의 과제’에서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을 여럿 제시한다. 그 방안에는 유네스코 등 기존의 국제기구를 활용해 협력의 범위를 넓혀가고, 동북아지역과 관련된 국제이해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또 각국의 원로 저명학자들이 참여하는 동북아고등학술원을 설립해 동북아 문화표준을 공동 모색하고, 역내 한국동포를 적극 활용한다든지, 한류를 통한 문화적 혼융을 시도하는 방법도 제시된다.
최송화 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동북아 3국은 외형으로는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실제 역사의 상흔으로 상호이해와 협력 관계를 제대로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이해를 통해 상호신뢰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동북아 협동은 피상적인 단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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