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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마누엘 푸익 장편소설 ‘조그만 입술’/간결한 문체…현란한 형식…영화보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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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마누엘 푸익 장편소설 ‘조그만 입술’/간결한 문체…현란한 형식…영화보는듯

입력
2004.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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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영화에서 문학의 모티프를 얻는 일이야 다반사이고 소설 문법까지 영상미학의 법도를 차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르헨티나 출신 소설가 마누엘 푸익(1932~1990·사진)은 이미 1960년대에 그 영역을 개척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지배문화로 군림하던 시절에 나고 자라 감독을 꿈꾸며 영화공부를 했고, 훗날 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 사건(73년)’으로 왕자웨이 영화 ‘해피투게더’의 밑그림을 제공했다.그의 장편소설 ‘조그만 입술’이 송병선(울산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작가는 소설에서 ‘파리의 연인’처럼 드라마 같은 사랑의 몽유(夢遊)에 찬물을 끼얹는다. 줄리아 로버츠의 ‘귀여운 여인’ 신화를 좇는 자들은 결국 그 환상의 희생자가 될 뿐이라는, 이제는 진부해진 메시지를 건조한 문체와 현란한 형식에 담았다.

소설은 아르헨티나의 작은 마을 코로넬 바예호스에서 빚어지는 청춘 남녀의 연애 이야기다. 영화 주인공처럼 멋진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여자들의 동경과 질투, 사랑이 영화촬영 현장의 콘티 같은 서술로 긴박하게 전개된다. 남자는 폐렴을 앓다가 숨지고, 여자들은 각자 다른 짝을 찾지만 그들이 꿈꾸던 ‘주인공’은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본심과는 달리 예의나 내숭, 가식, 연기 등의 방식으로 굴절되기 일쑤다. 작가는 말과 말의 이면을 서체를 달리해서 병렬하면서 그가 살았던 세상의 허위의식을 꼬집지만, 그의 냉소는 인간보편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푸익이 꿈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꿈과 꿈을 향한 통로로서의 대중문화를 옹호한다. 송 교수는 "우리에게는 현실공간과 도피공간이 모두 필요하다는 게 작가의 지론"이라고 말했다. 즉 변화를 위해서는 꿈을 꿔야 하며, 중요한 것은 꿈의 공간과 현실공간의 대화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 메시지를 소설 끝 자락에 강렬한 알레고리로 담아두고 있다.

‘조그만 입술’에는 무려 19가지 문학기법이 사용됐다는 평론가의 말처럼, 그의 소설은 뉴스, 편지, 비망록, 독백, 대화, 서술, 생각 등이 뒤섞여 있어 구분해서 읽기가 쉽지 않지만 고비를 넘기면 사정이 달라진다. 중반 이후부터는 마치 심리추리소설의 긴박감까지 느껴질 정도다. 이같은 미덕이 그의 소설을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에 놓이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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