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태어난 아이 / 사노 요코 글·그림, 임은정 옮김 / 프로메테우스출판사 발행· 9,000원*나는 고양이라고!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 사노 요코 글·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발행·각권 6,500원
일본 작가 사노 요코(66)의 그림책은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다. 우리나라에는 10종 가까이 소개되었는데, 그중에도 그의 대표작이자 제일 사랑받는 작품이 ‘100만번 산 고양이’다. 99만 9,999번을 살고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던 고양이가 100만번째 삶에서 비로소 사랑하는 짝을 만나 사랑의 기쁨을 깨닫고, 짝이 죽자 100만 번을 울고는 영원히 세상을 떠난다는 내용의 이 책은 사랑의 위대함을 가슴 저리도록 간절하게 그리고 있다.
이 책에 푹 빠진 마니아들이 반색할 만한, 사노 요코의 또 다른 그림책 3권이 나왔다. ‘100만번 산 고양이’와는 정반대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주인공을 내세운 ‘세상에 태어난 아이’와, 재치와 유머가 돋보이는 ‘나는 고양이라고!’와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삶의 지혜를 녹여내는 작가의 원숙한 솜씨를 확인할 수 있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100만번 산 고양이’만큼이나 기발한 설정으로 출발한다.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느낌도 없고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저 무심하다. 그런 아이가 태어날 결심을 한다. 강아지에게 물린 꼬마의 상처에 정성껏 반창고를 붙여주는 엄마를 보고는, 자기도 반창고를 붙이고 싶어진 것이다.
엄마의 사랑이라는, 자신이 전혀 몰랐던 세계가 그리워 "‘반, 창, 고… 반, 창, 고!" 하고 소리치던 아이가 마침내 "엄마!" 라고 외치며 세상에 태어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아이는 이제 아픔과 배고픔, 피곤을 느끼고 기쁨도 알게 된다. 어느 순간이든 태어난 아이를 꼭 껴안아주는 엄마의 포근한 품 속에서.
태어남과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단순하지만 감동적인 내용을 작가는 매우 독특한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석판화와 펜화 기법을 구사해 파랑과 노랑, 초록과 빨강의 거친 선으로 그린 그림들은 날카로운 것에 긁힌 상처 자국처럼 예민하고 쓰라리다. 여느 그림책에서 흔히 보는 예쁘고 사랑스런 느낌과는 사뭇 달라서 낯설기조차 하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사람을 잡아당기는 강렬한 자장을 지닌 그림에서 작가의 역량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는 마당의 큰 나무를 성가시고 귀찮게만 여기던 아저씨가 나무를 베어버린 뒤 비로소 나무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야기. ‘나는 고양이라고!’는 고등어를 좋아하던 고양이가 고등어 떼에 쫓겨 혼비백산 달아나는 모습을 통해 나보다 약한 이들의 마음을 한번쯤 헤아려보라고 소리없이 충고한다. ‘두고 보자!…’는 최소한의 선과 색채를 사용한 그림이 부드럽고 따스하다. ‘나는 고양이라고!’는 익살스런 그림을 보는 재미가 그만이다. 특히 고등어 떼를 피해 영화관에 들어간 고양이가 객석을 점령한 고등어 떼를 발견하고 기겁을 하는 표정에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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