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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추석 극장가기-'21 그램' 등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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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추석 극장가기-'21 그램' 등 2편

입력
2004.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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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1 그램'에 따르면 사람은 죽을 때 21g의 몸무게가 빠진다고 한다. 겨우 그 21g에 불과한 영혼의 무게가 우리 삶을 버티는 고귀한 버팀목이라는 건 영화가 다 끝날 때 저절로 알게 된다. 교통사고로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 받은 한 남자와 그에게 심장을 준 남자의 아내와 그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또 다른 한 남자의 얘기를 담은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을 조각 내고 의식의 흐름을 좇듯이 연출하고 있다. 관객은 사건의 개요를 영화가 시작한지 한참 지나 조금씩 알게 된다.실은 이게 괜한 예술적 허세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21 그램’은 단순한 이야기를 복잡하게 연출하고 있지만, 그 번잡함을 일부러 끌어들인 이유가 배우들의 연기를 보여주기 위한 방편이라는데 이해가 미치면 멕시코 출신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투투의 선택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들고 찍기로 쫓아다니는 카메라에 기록된 베니치오 델 토로, 숀 펜, 나오미 와츠 세 배우의 표정은 인간 영혼의 장엄한 전시장 같다. 자의로 선택할 수 없었던 불우한 운명에 대하여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견디며 결국 용서와 이해에 이르는 ‘21 그램’은 배우들의 연기야말로 영화의 핵심이라는 걸 웅변조로 증명한다.

특히 베니치오 델 토로의 연기는 그의 배우 경력의 정점에 올릴 만한 수준을 보여준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극한에 몰린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과장하는 듯이 보일 위험이 있지만 그는 어느 순간 관객의 심장을 훔치고 비통에 젖게 할 만큼 깊은 차원에서 심금을 울린다.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셋'은 9년 전 만들어진 ‘비포 선라이즈’의 속편이다. ‘전편만한 속편은 없다’는 영화계의 속설에 비추어 이 영화는 드문 예외가 될 만하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빈 밤거리를 걸으며 풋사랑을 나눴던 그 때의 청춘남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다시 만나지는 않았을까 라는 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일종의 후일담 형식을 취한 ‘비포 선셋’에서 이야기의 무대는 파리로 옮겨졌지만, 전작처럼 톡톡 튀는 대사의 묘미는 여전하다. 건강하고 맑고 재치 있는 남녀 주인공 제시와 셀린의 주고받는 대화는 매사에 열려있고 흡수력이 있는 관대한 젊음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그들은 나이를 먹었고 훨씬 성숙해졌다. 아마도 사랑을 일시적으로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엔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비포 선셋’은 남녀가 만나 만끽하는 그 현재적 순간의 충일감을 예찬하면서 다시 한번 따뜻한 삶에의 긍정에 이른다. 가공 통조림 같은 영화들이 즐비한 곳에서 유기농 채소를 꺼내 먹는 싱싱한 즐거움이 이 영화의 내밀한 속살에 스며있다. 보고 있으면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극장개봉작 말고도 볼만한 영화제가 꽤 있다. 에릭 로메르 회고전은 196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중인 누벨 바그 세대의 거장 로메르의 영화를 일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누벨바그 세대 중 가장 늦게 데뷔했지만 여전히 젊은 기분으로 영화를 찍고 있으며, 동시에 문학과 미술적 교양이 삶에 대한 통찰과 만나는 원숙한 스타일을 완성한 로메르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CJ 아시아인디영화제는 부산영화제 등에서 상영된 각국의 독립영화를 모아 상영하는 자리이고, 환경을 주제로 담은 영화들만 모아서 상영하는 서울환경영화제도 있다. 이 중 어느 한 군데라도 들르고 싶은 성의가 없다면, 영화팬으로서는 낙제점일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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