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고 옷과 놀지 말라는 법 없다. 기상천외한 아이템들을 사용해 위급한 상황을 탈출하는 맥가이버나 형사 가제트 처럼 다양한 장비를 옷에 부착해놓은 이색상품들이 남성들의 장난감을 자처하며 인기를 얻고있다. 제품 안트벨트 FX1.0. /오대근기자 inliner@hk.co.kr벤처사업가 이희진(40·서울 서초구 반포동)씨는 요즘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친분을 나눌 때 옷 덕을 톡톡히 본다. 추석선물로 아내에게서 받은 세미정장 스타일 점퍼가 주인공이다. 점퍼 오른쪽 앞주머니에는 나침반이, 왼쪽 주머니엔 소형 플래시가 달려있다. 가슴 지퍼를 열면 안경을 닦을 수 있는 안경닦이 천이 쏙 나온다. 그 아래쪽 작은 포켓엔 빅토리녹스 다용도 칼이 들어있어 갑자기 캔을 딸 일이 생기거나 소형 드라이버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처음엔 좀 특이한 옷이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볼수록 재밌어요. 더구나 비즈니스 관계로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많은데 서로 어색할 때 옷 이야기부터 끄집어 내면 다들 신기해하면서 대화가 한결 부드러워져요. 옷이 이렇게 흥미로운 대상이 될 수도 있구나 싶어요."
이씨의 옷은 FnC코오롱이 올해 새로 내놓은 캐주얼 브랜드 안트벨트의 ‘FX1.0’이다. 옷 모델명에 무슨 하이테크 기기류 같은 이름을 붙인 게 벌써 전략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일종의 SUV(Sports Utility Vehicle)형 옷이에요. SUV라는 게 그렇잖아요. 산악트레킹이나 익스트림 레포츠를 광적으로 즐길 시간과 여유가 없으면서도 그런 아웃도어 라이프를 ‘꿈꾸는’ 도시 직장인들을 위한 옷이죠. 마치 야외의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맥가이버나 가제트 형사처럼 다양한 비밀도구들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은 재미를 주기위해 만들어졌어요. 옷이 남자들을 위한 하이테크형 장난감이 되지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안트벨트 백배순 상무의 말이다.
남성용 장난감으로서의 패션은 곳곳에서 목격된다. 푸마블랙스테이션이 가을 신상품으로 내놓은 신발 ‘XC Favo’는 신발 뒷굽이 서랍처럼 밀어서 끼우거나 빼게 되어있다. 이 뒷굽에는 세가지 색상으로 구성된 육각형의 쿠션볼을 교체할 수 있도록 되어있어서 달리기할 때, 걸을 때, 골프를 칠 때 등 상황에 맞춰 신는 사람이 쿠션을 조절 할 수 있다. 롯데백화점 푸마 매장 관계자는 "교체형 쿠션볼이라는 개념이 흥미로워서인지 신발 종류 중 가장 인기있는 모델"이라며 "특히 20대 중·후반 남성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 디자이너 미하라 야스히로가 푸마를 위해 디자인한 신발은 변신로봇에서 영감을 얻었다. 로봇의 재질을 연상시키는 번쩍이는 고무소재가 발등을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뒷꿈치 부분엔 로봇다리의 세로기둥 디자인이 채용됐다.
최근 에어밴티지 제품이 캐주얼과 아웃도어에 걸쳐 다채롭게 출시되고 있는 것도 맥을 같이 한다. 점퍼나 세미정장 재킷의 안쪽에 기능성 소재인 에어밴티지를 착장한 제품들은 안트벨트를 비롯, LG패션의 패밀리브랜드 헤지스, 나이키, 골프웨어 엘로드 등 다양한 캐주얼웨어와 골프웨어에 사용되고 있다. 에어밴티지는 옷에 달린 고무호스를 통해 착용자가 직접 공기를 주입하거나 빼서 체온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 몸에 고무호스를 작용한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옷 개념을 넘어서는 것으로 색다른 흥미를 유발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패션은 격식이거나 규범, 좀 더 나가면 성공전략 정도였다. 그러나 기능성과 하이테크 요소의 도입은 남성도 ‘패션은 재미(Fun)’라는 공식에 익숙해지도록 만들고 있다.
패션저널리스트 조명숙씨는 "여성들이 다양한 패션아이템을 시도해보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데 익숙한 반면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은 여전히 ‘옷치레를 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통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다양한 기능과 장비들을 통해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는 전략은 남성들의 숨겨진 패션욕구를 발굴하고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고 말했다.
/이성희기자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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