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도 그리고 그때보다 더하다는 요즘 불황 속에도 이 책의 판매는 한결 같다."(‘삐뽀삐뽀 119 소아과’를 낸 그린비출판사 편집부 김현경씨)출판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다들 "문 닫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인 중에 콧노래를 부르는 출판사들이 몇몇 있다. 성공비결이야 가지각색이지만, ‘대박’의 뒤에는 한결 같이 ‘스타 저자’가 버티고 있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하고, 출판사 직원보다 더 뛰어난 기획 감각을 지녔으며, 책에 대한 열정으로 넘치는 데다, 다작의 재능까지.
격주간 출판기획전문지 ‘기획회의’가 최신호에서 ‘이 저자가 팔린 이유’란 제목으로 잘 팔리는 책을 쓴 저자 11명의 성공요인을 해부했다. ‘베스트셀러 제조기’ 명단에는 소아과 의사 하정훈씨,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 역사학자 이덕일씨와 성공회대 한홍구, 전북대 강준만, 한양대 정민 교수, 미술평론가 이주헌씨, 노르웨이 오슬로대 박노자 교수, 공병호 박사, 과학문화연구소 이인식 소장, 소설가 김하인씨가 올랐다.
◆육아·교육 코드의 폭발력
‘육아’ ‘공부’를 빼놓고 베스트셀러를 말하기 힘들다. 출산율은 낮아지고 교육열은 더 뜨거워지면서 자녀교육 관련서는 ‘대박’의 대열에서 탈락하는 법이 없다. 아이들과 관련된 질병과 대응요령, 육아법 등을 망라해 소아과 의사가 쓴 ‘삐뽀삐뽀 119 소아과’가 대표적인 경우다. 출판사에서 "저자 하정훈이란 이름이 낯설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어린 아이의 부모는 아닐 것이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1997년 초판이 나온 뒤 지금까지 꾸준히 팔린다.
비결은 엄마들이 아기를 키울 때 정말 궁금해 하는 내용을 저자가 구어체의 친절한 문투로 전달한 데 있다. PC통신시절부터 육아 상담을 시작한 하정훈씨는 정말 아이들을 치료하고 상담하기 좋아하는 데다, 늘 공부하고 또 그 내용을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한다. 개정판은 1,000쪽이 넘게 분량을 늘렸고, 다시 찍을 때마다 내용을 고치는 열성적인 저자다.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를 포함해 올해까지 4권의 교육서를 출간한 신의진 교수 역시 ‘내가 여자이고 엄마여서 안다’는 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논조, 소아정신과 의사라는 전문성, ‘적기 교육’이라는 틈새시장 공략이 맞아 떨어진 데다 외모에다 언변까지 좋아 홍보에도 그만인 점이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고전과 역사를 새로 써라
인문학 분야의 스타 저자들은 고전을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역사인식,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충실하게 역사의 장면장면을 재구성해 보여주는 재능 등이 높이 평가됐다.
최근 낸 ‘미쳐야 미친다’를 포함해 쓰는 족족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는 한문학자 정민 교수는 재미와 교훈을 어우러지게 만드는 기획력, 맛깔진 문장력 등이 탁월한 저자로 꼽혔다. 그는 ‘자신만의 대중적 감성과 함께 책으로 낼만한 텍스트를 기획, 편집할 수 있는 종합적 기획력’을 갖추었으며, 그의 글은 ‘한결같이 옛 사람들의 체취를 진하게 담고 있으면서도 현대적’이다.
대중 역사서 장르의 대표 저자 중 한 사람인 이덕일씨는 대중이 호기심을 가지는 역사의 쟁점을 책으로 소화해내는 능력, 다작이면서도 한결같이 녹록치 않은 연구 성과를 담아내는 전문성이 눈에 띈다. 게다가 어떤 면에서는 편집자나 서점 직원보다 더 뛰어난 기획, 마케팅 능력을 보여주는 ‘프로’로 평가 받는다. ‘대한민국사’로 베스트셀러 저자 대열에 오른 한홍구 교수는 현대사를 시사와 연관해 쉽고 재미있게 읽을 기회를 주었을 뿐 아니라, 역사 상식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선 통찰력을 보여주는 글솜씨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실감각과 빠른 글쓰기
공병호 박사도 다작이면서 내는 책마다 웬만큼 ‘히트’ 치는 저자다. 자기계발서를 중심으로 여러 분야의 책을 두루 낸 공 박사의 강점은 현실에서 필요한 주제들을 다양하게 구상하고, 주제를 잡으면 그것을 빠른 속도로 글로, 책으로 옮겨낸다는 점이다. 주제 선정에서부터 실제 집필에까지 녹아 있는 현실감각과 명확한 대안 제시는 그의 특장이다.
이밖에 이인식 소장은 과학을 쉽고 명쾌하게 또 인문학 등 다른 분야와 크로스오버시키는 실력이, 이주헌씨는 대중친화적인 글쓰기 능력과 미술을 매개로 시대를 해석해내려는 의욕이 돋보이는 것으로 평가됐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인기 저자들도 처음에는 무명이었을 것"이라며 "무명 저자를 발굴해 인기 저자로 키우려는 출판기획자는 무엇보다 텍스트를 읽어내는 남다른 안목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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