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 꺼진 집창촌…‘선수’들은 PC방 가 윤락채팅성매매 특별법 시행 1개월이 다 돼가는 19일 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의 속칭 ‘588’ 입구. 밤새 은은한 홍등을 밝히던 골목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덮여 있었다. 골목 안쪽에는 두 명씩 짝을 지어 돌아다니는 의경들 뿐, 비틀거리는 취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아예 인적이 사라진 골목은 선뜻 발을 들이기가 망설여질 만큼 깊은 침묵에 싸여 있다.
"골목마다 순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 어느 겁 없는 놈이 장사를 할 수 있겠어요." 불 꺼진 가게마다 문을 두드리며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만난 포주 박모(41)씨는 손사래부터 쳤다. 박씨는 "사채를 끌어다 쓴 몇몇 가게 사장들이 전화로 주문을 받아 아가씨를 보내주는 식으로 영업을 한다는 소문은 있다"며 "하지만 골목 안에서는 지난 달 이후 완전히 영업을 접은 상태"라고 말했다. 박씨는 "데리고 있던 여종업원 5명 중 선불금이 남아있던 2명은 추석 이후 아예 연락이 끊겼다"며 "한두 달 후에도 단속이 풀릴 기미가 안 보이면 완전히 문을 닫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또 다른 골목에서 마주친 정모(35)씨는 "이 동네 건달 생활 20년 동안 이런 지독한 단속은 처음"이라며 "이미 방송이며 신문에서 청량리는 폐허라고 떠들어 댄 마당에 예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전직 ‘삼촌’이라고 소개한 그는 "요즘 일본에선 한국식 출장마사지인 속칭 ‘전화바리’ 영업이 인기라고 들었다"라며 "단속이 계속될 것 같으면 애들을 데리고 건너갈까 생각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같은 날 밤 서울 한강로3동 소재 용산 집창촌. 경찰관들이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고 호객을 하던 삐끼와 아가씨들이 사라진 것은 청량리와 같았지만 가게마다 붉은 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업주들의 모임인 ‘한터’ 용산 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김광용 지부장은 "불을 켜놓는 것은 언젠가는 가게 문을 다시 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역 직업여성들의 모임에서 간사를 맡고 있는 정희주(31·여)씨도 "집창촌은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게 없는 밑바닥 인생들이 돈을 모아 자립하고 집안을 일으키게 해주었던 삶의 터전"이라며 "성매매 특별법 시행으로 혜택을 본 이들은 선불금을 갚지 않아도 돼 불로소득을 챙긴 일부 여성들과 음성적으로 성매매를 하고 있는 유사 업종들 뿐"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시내의 대형 집창촌들이 단속의 여파로 텅 비어버린 것과는 달리 용산 집창촌 인근 보광동의 한 PC방은 2~3명씩 몰려 앉아 채팅을 하고 있는 이른바 집창촌 ‘선수’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유명 채팅사이트에 접속해 여러 개의 일대 일 대화창을 띄워놓고 익명의 고객들과 흥정을 벌이던 이모(24·여)씨는 "곧 카드 결제일이 돌아오는데 마냥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지 않느냐"며 "귓속말로 서비스 조건과 가격을 흥정하고 휴대폰 번호만 교환해 약속한 장소로 나간다"고 말했다. 이씨의 동료 유모(24·여)씨도 "채팅은 자칫 유영철 사건 같은 봉변을 당하거나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릴 수도 있어 가능한 자제한다"면서도 "대신 하루 3~4통씩 걸려오는 단골 손님들을 밖에서 만나는 것으로 근근히 생활비와 용돈 정도는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안동과 강남 일대의 일부 업소들을 제외하고는 시내 대부분의 안마시술소나 퇴폐 이발소들도 여전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단속에 대비해 무전기까지 휴대하고 영업중인 종로의 한 안마시술소 사장은 "우리는 허가를 받은 업종이라 현장을 들키지 않는 한 문제될 것이 없다"며 "단속이 나오더라도 콘돔을 변기에 버리는 등 증거를 남기지 않도록 훈련이 돼있으니 안심하고 이용하라"고 권유했다.
룸 살롱의 2차도 은밀히 이루어지고 있다. 서초구청 부근의 A룸살롱 매니저는 "계산 후에 방을 잡고 업소로 전화를 하면 아가씨를 보내준다"며 "가게 부근의 모텔은 단속이 심해 가능한 조금 떨어진 동네에 숙소를 잡으라고 권한다"고 귀띔했다. 마담 김모(32)씨도 "예전에는 하루 20~30 팀 정도 손님이 있었지만 단속 후 3분의 1 이하로 크게 줄었다"며 "고객 관리 차원에서는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2차를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신재연기자 pet333@hk.co.kr
■달라진 직장 性풍속도/ 접대 술자리 ‘2차’자리 기피 일부선 해외원정
한 중소 벤처업체 직원인 A씨는 최근 납품을 하고 있는 대기업 직원들을 접대하기 위해 술자리를 마련하려 했다가 "중국으로 나가자"는 말을 듣고 아예 해외 나들이를 준비하기로 했다. A씨는 "국내에서는 ‘2차’를 나갔다가 잘못하면 단속에 걸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과 함께 성 매수 남성이 대거 입건되는 등 처벌이 강화하자 직장 사회의 성 풍속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별법 시행 이후 18일까지 성 매수 혐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남성은 무려 1,632명. 구속되거나 영장이 신청된 남성도 64명에 달한다.
단속과 처벌이 강하게 지속되자 직장인들은 접대 후 성매매 업소 이용이 뜸해지는 게 일반적 추세다. 중견 건설업체에 다니는 최모(32)씨는 "회사 일로 접대하는 경우에도 2차까지는 안가는 분위기"라며 "예전과 달리 접대 받는 사람들도 굳이 고집을 피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차원에서 아예 ‘2차 금지’라는 내부 지침을 내린 곳도 있다"고 전했다. 또 일부지만 접대를 위해 해외 원정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회식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제약업체 직원인 정모(32)씨는 "신고포상금제도 있고 또 현장에서 안 걸려도 나중에 추적 조사로 걸릴 수 있다는 얘기도 있어 마음이 편치 않다"며 "잘못하면 망신을 당하고 가정 생활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35)씨는 "얼마 전 한 단란주점에서 ‘예전과 다름 없이 정상 영업 중이니 많은 이용을 바란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고는 깜짝 놀랐는데 내 명함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20代 성매매 여성의 하소연/"수렁서 탈출했어도 선불금에 항상 불안"
*부모 이혼후 가출…"지원시설 나가면 갈 곳 없어"
서울 미아리 텍사스촌을 탈출해 서울 강북의 한 성매매 여성 지원센터를 찾은 김민경(23·가명)씨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휴대폰으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친구 찾기 서비스’에 가입돼 있어 ‘삼촌’(포주)들이 수시로 전화를 한다. 사고 쳤다가(선불금을 받고 일하다 탈출한 경우) 잡혀와 고생하는 애들을 많이 봤다"며 인터뷰 내내 연신 담배를 피워 물었다.
김씨의 가장 큰 고민은 2,000만원이나 되는 선불금 문제. "삼촌들이 사채 금융회사를 통해 생활자금 대출 형식으로 돈을 주고 차용증서를 작성하는 바람에 개인 채무 관계가 아닌, 신용협동조합에 대한 채무관계가 됐다"는 김씨는 "특별법으로 형사상 사기죄는 무혐의 처리돼도 민사 소송으로 또다시 물고 늘어지기 때문에 그때마다 얼굴을 봐야 할 것 같아 괴롭다"고 말했다.
고2 때 부모의 불화와 이혼으로 가출한 김씨는 지방의 한 티켓다방에 선불금 없이 취업했으나 2개월간 근무하면서 결근비 30만원, 지각비 시간당 5만원 하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벌금이 불어나 빚이 400만원으로 늘어났다. 이후 2, 3개월 단위로 20여 곳의 다방을 전전하면서 선불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3년 전 선불금 2,000만원에 미아리로 팔려온 김씨는 "지금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 쓰고 시위하러 거리로 나오는 애들도 대부분 선불금 문제 때문에 할 수 없이 참가하는 게 분명하다"며 "성매매 여성들이 업주에게 진 빚이 채무로 인정되지 않자 일부 업주는 이들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 받아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카드깡을 하는 편법으로 옭아매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모가 모두 새 살림을 하고 있어 6개월~1년은 지원시설에서 버틴다고 해도 이후에는 갈 곳이 없는 김씨는 "우선은 손뜨게 공예를 열심히 배워보고 나중 일은 그 때 가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김씨와 대화를 나누던 지원시설 상담원은 "성매매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져 있다"며 "단순히 산부인과 진료로만 끝날 것 같았던 의료서비스를 시작해보면 자궁경부암 등으로 종합병원에 입원해야 하거나 전문적인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김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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