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드라마를 비롯한 프로그램 전반의 침체가 장기화한 가운데, 싫든 좋든 외부의 비판을 수용해 대대적 개혁을 추진중인 KBS, SBS와 달리 ‘개혁의 무풍지대’로 남아있는 데 대해 안팎에서 비판이 높다. 게다가 위성DMB의 지상파 재송신 허용여부 등 뉴미디어 정책에 관한 혼선, 지역MBC의 재송신 권역조정을 둘러싼 일부 계열사들의 반발 등 내부갈등도 깊어지고 있다.◆프로그램 경쟁력 하락
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MBC 채널의 평균 시청률은 7월 초 9.4%에서 10월 둘째주 8.4%로 떨어졌다. 장르별, 시간대별 시청률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주간시청률 30위 안에 드는 프로그램도 6,7개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과거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다모’처럼 시청률은 좀 낮아도 사회적 이슈가 되는 ‘화제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채널경쟁력의 견인차 노릇을 하는 드라마의 부진. 올해 최대의 야심작인 ‘영웅시대’는 13% 안팎의 시청률 부진은 물론, 무협소설 식의 황당한 전개와 친일파 미화 논란 등으로 작품성에서도 혹평을 받고 있다. 특히 이 드라마는 현재 TV 프로그램을 통틀어 광고단가(15초당 1,225만5,000원)가 가장 높아 MBC는 광고주들의 불만이 누적될 경우 채널 전체광고 수주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의 유일하게 시청률 10위 안에 드는 일일연속극 ‘왕꽃선녀님’은 임성한 작가의 갑작스런 집필중단 선언으로 조기종영 위기에 처했다. MBC는 같은 작가의 전작 ‘인어아가씨’처럼 연장방영을 염두에 두고 후속작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 일일연속극이 파행을 겪을 경우, 가뜩이나 KBS1 ‘뉴스9’에 5~6% 가량 뒤지는 ‘뉴스데스크’ 시청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MBC로서는 벼락을 맞은 셈이다.
오락, 교양 프로그램의 경우도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간판 프로그램의 인기가 시들해진 상황에서 참신한 새 프로그램 개발도 지지부진 해, 시청자를 상대로 실험이라도 하듯 신설 프로그램을 1년도 못돼 간판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이번 가을개편도 땜질식 처방에 그친데다, 주말오락프로 ‘심심풀이’에 선정성 등으로 강한 비판을 받았던 남자 연예인과 여자 일반인(혹은 연예인 지망생)의 짝짓기 코너를 신설해 빈축을 사고 있다.
◆자성도 없고, 개혁도 없다.
시청률의 주기적 부침은 흔히 있는 일. 그러나 전 부문에 걸친 동반침체가 장기간 지속되고, MBC가 ‘자부’해온 사회적 의제설정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시적 현상으로 돌리기 어렵다. "조직이 너무 낡아, 요즘처럼 매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한 직원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조직의 노후화는 인력구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방송문화진흥회가 펴낸 ‘2003 경영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말 현재 MBC의 임직원(계약직 제외)은 총 1,449명으로, 이중 차장대우 이상이 무려 61%인 895명에 이른다. 보고서는 "직급상승에 따른 보직 적체현상, 직무에 따른 직급수준의 불일치로 인력운영의 비효율성이 우려된다"는 진단과 함께 ▦부서별 성과평가제도 도입 지연 ▦능력급제 시도 및 논의 부재 ▦인력구조 개선을 위한 전사적 합의 도출 노력 및 논의 부진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더구나 위성DMB 참여를 둘러싼 노사갈등 등에서 드러나듯이 현 경영진의 조직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지는데다, 임기 중 사임한 김중배 전 사장의 뒤를 이은 이긍희 사장의 임기 만료가 내년 2월로 닥치면서 ‘레임 덕’ 현상까지 겹쳐 개혁착수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한 PD는 최근 노조가 SBS와 벌인 보도전쟁을 ‘방송개혁을 위한 진통’이라고 강변한데 대해 "우리 내부의 개혁은 눈감으면서 방송개혁을 말할 수 있는지 솔직히 낯부끄럽다"고 말했다.
조직문화의 병폐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직원은 "일 잘한 사람을 칭찬하기보다 특혜를 받았다고 씹는 등 서로에게 배타적 분위기가 팽배하다"면서 "시청자를 계도의 대상으로 보고 프로그램에 지나치게 자기 주장을 담으려는 태도도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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