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더화·장쉐유 17년만에 호흡*향수 자극했지만 신선함 떨어져
*‘친구’등과 유사한 장면 눈길
1986년 바바리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등장했던 홍콩 느와르는 과장된 비장미로 1990년대 초반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50년대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B급 탐정영화들을 지칭하던 ‘필름 느와르’에서 착안해 이름 붙여진 이 조류는 엄격히 장르 구분을 하면 갱스터 영화이다. 국적불명의 명칭으로 한국 스크린을 장악했던 홍콩 느와르는 홍콩영화의 전성기와 궤적을 같이했고, 자아성찰 없는 과도한 자기복제로 함께 몰락했다.
순식간에 침몰한 홍콩 느와르의 회생을 알린 것은 비장미의 거품을 제거하고 팽팽한 긴장감과 빠른 편집으로 무장, 2002년부터 선을 보인 ‘무간도’ 시리즈이다. ‘강호’는 ‘무간도’ 시리즈의 성공을 등에 업고 새로운 틀 속에서 홍콩 느와르의 미래를 모색하는 영화다.
삼합회 소두목 3명은 보스 홍(류더화)의 친구이자 오른팔인 2인자 레프티(장쉐유)의 잔혹함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홍과 레프티를 제거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홍과 레프티는 소두목 3명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심한 대립각을 형성하지만,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요갈등은 아니다. 대신 보스를 살해해 운명처럼 주어진 밑바닥 인생을 단번에 뒤집으려는 두 친구 터보(진관희)와 윅(여문락)이 과연 목숨을 건 도박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들이 목표로 삼은 거물이 홍일까라는 궁금증이 극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들 네 남자는 두 개의 이야기 궤도를 따로 달려가다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합쳐진 마지막 지점에서 만난다.
‘강호’는 홍콩 느와르에 대한 향수가 물씬 풍긴다. ‘열혈남아’(1987년)에서 ‘큰 형님’과 부하로 출연, 관객의 목젖을 뜨겁게 했던 류더화(劉德華)와 장쉐유(張學友)는 17년 만에 호흡을 맞춘 이 영화에서도 의리로 똘똘 뭉친 상하관계를 다시 보여주며 옛 추억을 자극해 관객의 눈길을 잡는다. 선악의 구분보다 남자와 남자 사이의 관계를 더 중시하고, 그 앞에선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모습은 이 영화가 홍콩 느와르의 피를 이어 받았음을 보여준다.
첫 장편 ‘푸보’(2003년)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던 웡칭포(黃精甫)감독은 빠른 장면전환과 슬로 모션 등으로 독창적인 비주얼을 과시한다. 계단을 내려오던 류더화와 장쉐유가 쏟아지는 빗속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 마지막 장면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친구’를 복제한듯 빼닮아 흥미롭다. 그러나 탄탄한 짜임새로 홍콩 느와르의 새 가능성을 보여주던 영화는 감정이 과도하게 개입되면서 마지막에 급전직하한다. 칼을 들고 달려드는 갱들의 무리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수많은 시체들은 홍콩 느와르의 치명적 약점이었던 액션의 비현실성을 고스란히 반복한다.
경찰과 폭력조직에 숨어 든 스파이를 통해 혼돈의 시대를 차분하면서도 냉혹한 눈길로 포착했던 ‘무간도’가 홍콩영화의 희망을 보여주었다면, ‘강호’는 그 이상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과거 홍콩 느와르의 영광과 새로운 형식을 요구하는 현실 사이에서 허둥댄다. 어쩌면 이 모습은 멀리 있는 빛을 보았을 뿐, 아직도 험하고 먼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홍콩영화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22일 개봉. 18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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