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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엄숙 과잉’의 토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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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엄숙 과잉’의 토론 문화

입력
200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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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률을 포함한 여러 가지 규칙이 일반 시민들에 의해 결정된다. 규칙은 필연적으로 사람들의 욕구와 생각을 반영하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률과 여론은 일치한다. 즉, 법률은 글로 쓴 여론이며 이 여론이 바로 민주주의의 핵심인 것이다. 글로 쓴 여론에 의한 지배가 곧 법치주의다.이러한 여론이 형성되는 시공간적 조건을 하버마스는 ‘열려 있음 혹은 공론장(公論場·Oeffentlichkeit)’이라고 불렀다. 공론장은 사적인 세계와 공적인 정치 체계에 대해 모두 열려 있는 공간이며, 사회구성원 간의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토론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여론은 이러한 토론과 대화를 통해서 생겨난다.

정치적 대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협상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 절차적 도구로서의 숙의적 논의이다. 회의나 협상, 혹은 미리 주제를 정해 놓고 하는 토론과 같은 것들이 이 숙의적 논의에 속한다. 다른 한 가지는 우리가 자아, 자기 이익, 정의(正義),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이성의 개념들을 세울 수 있는 기초가 되는 대화적 논의이다.

나는 민주주의에 있어서 정치적 대화의 기본은 사교적 대화여야 한다고 믿는다. 브라이스나 타르드, 듀이 등 많은 학자들 역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교적 대화가 사람들에게 합리성을 갖게 해 주고 자유롭게 해 주는 궁극적인 힘이 있다고 보았다.

대화가 공중의 정신을 고양시킨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모렐레와 같은 18세기 이론가들은 "대화의 궁극적 목적은 오락"이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대화 참여자들의 정신을 고무하는 점진적 힘"을 갖고 있다고 강력하게 믿었다. 대화는 정신을 확장하고, 역지사지의 정신을 배양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개인적 아집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는 것이다.

정치적 대화를 통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사안들에 대해 논의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과 논쟁하고, 그리고 의견을 바꿀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생각을 교환하고 기호의 틀을 공유하며 프레임을 구성한다. 이를 통해 대화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조건의 하나인 해석의 공동체를 수립해 준다.

사교적 대화는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나 토론과는 거리가 먼 형태의 대화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교적인 대화는 커뮤니케이션 이성을 형성하고, 여론의 원천이 되며, 숙의적 대화의 규칙들을 생산해 낸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대화로서의 토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토론이 엄숙한 도구로서의 숙의 과정이어야만 한다는 주장만이 넘쳐 나고 있다. 텔레비전 토론에 관한 논의는 특히 그러하다. 텔레비전 공공 토론 프로그램에 대한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토론 프로그램들은 주제와 참여자 그리고 형식 모두에서 경직되고 획일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방송 3사의 대표적 토론 프로그램을 비교 분석한 이들은 프로그램 간 논제의 유사성, 권위적인 남성 패널, 규격화된 진행과 심층적인 논지 전개의 통제 등을 대표적 문제로 꼽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방영되고 있는 시사토론 프로그램은 사실 다양성과 자유로움이 억압되어 있는 모습으로 공론장의 진정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는 공론장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는 토론 문화의 정착이다. 공론장에서의 토론의 본 모습은 사교적 대화여야 한다. 그러나 토론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여러 논의들은 안타깝게도 대화로서의 토론을 강조하기보다는 한결같이 엄숙한 도구로서의 숙의적 논의만을 강조하고 있다. 바람직한 토론 문화는 자유롭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교적 대화를 지향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김주환 연세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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