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남종화풍의 창시자’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1707~1769)은 세상을 잘못 타고난 불운의 화가였다. 겸재(謙齋) 정선(1676~1759), 관아재(觀我齋) 조영석(1686~1761)과 더불어‘삼재(三齋)’로 일컬어지지만, 진경산수화풍과 풍속화풍을 각각 창안하며 중국과는 차별적인 조선 고유의 색을 찾아 나선 겸재와 관아재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갔다. 역적가문으로 낙인 찍히는 바람에 평생을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된 채 중국 화첩 속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불우한 천재 화가의 설움 때문이었다.간송미술관이 기획전으로 17일 막을 올린 ‘현재대전’은 심사정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자리다. 중국 남종문인화풍에 천착했던 그의 그림을 두고 당시를 지배한 ‘진경문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대주의적 화풍’으로 해석하며 평가절하 하는 감도 적지 않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현재는 중국의 남종문인화풍을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조선화함으로써, 겸재, 관아재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조선 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했다"고 평가한다.
이번 전시에는 산수, 인물, 화조, 초충 등 화과(畵科)에 걸쳐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수집한 현재의 그림 100점이 나온다.
표암(豹菴) 강세황(1712~1791)이 심사정의 작품에 대해 "가장 잘하는 것이 화훼와 초충, 영모였으며 그 다음이 산수였다"고 평가했다지만, 실은 스승이었던 겸재 정선의 산수화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빛이 바랬을 뿐 현재가 가장 주력했던 그림은 산수였다고 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도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완성한, 생애 마지막이자 최고의 작품인 가로 8.18m 세로 58㎝의 대작 ‘촉잔도(蜀棧圖)’다. 관중(關中)에서 사천(泗川)으로 가는, 험난한 길 촉도(蜀道)에 인생을 빗대어 형상화한 이 작품은 현재가 그의 모든 화법을 총망라한 일생일대의 역작. 소재나 구도는 중국 고사에서 빌려왔으나, 붓으로 대담하게 쓸어 내리는 부벽찰법(斧劈擦法)으로 표현한 바위산은 겸재의 영향을 받아 우리의 산수를 표현했다는 평가다. 간송이 1936년경 서울의 큰 기와집 다섯 채 값인 5,000원에 이 그림을 구입한 뒤, 일본 교토(京都)에 보내 6,000원을 들여 복원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계거상락’(溪居上樂·시냇가에 사는 최상의 즐거움),‘강산무진’(江山無盡·강산은 끝이 없다)’ 등 8폭 그림에서 현재가 남종화화풍을 자신의 그림 언어로 정립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방고산수첩(倣古山水帖)’과 거친 필법과 대담한 묵법의 도석인물화 ‘해섬자희(海蟾自戱·유해섬이 혼자 놀다)’등의 걸작도 공개된다. 전시는 31일까지. (02)762-0442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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