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이 제작해 20일부터 공연하는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우리가 잘 몰랐던 빼어난 남자 가수 3명을 한꺼번에 만나는 자리이다. 유럽의 주요 극장에서 활동해온 테너 박기천과 나승서, 바리톤 서정학이 그 주인공들이다. 박기천은 20년 넘게 독일에서 살며 활동 중이고, 다른 둘도 10년 이상 국내 무대와는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낯익은 얼굴은 아니다. 하지만 성악계는 진작부터 이들의 기량과 활약을 알고 최고의 가수로 평가해 왔다.두 테너는 남자 주인공 에드가르도 역으로 번갈아 출연하고, 서정학은 여자 주인공 루치아의 오빠 엔리코를 맡는다. 말로만 전해 듣던 이들 삼총사의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다.
독일 하노버 국립극장의 주역인 박기천의 활동무대는 유럽 전역과 러시아, 남미, 대만까지 뻗친다. 국내에는 1991년 국립오페라단의 ‘일 트로바토레’로 데뷔했고, 지난해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내한공연 ‘라 트라비아타’에 출연했다. 에드가르도 역은 40번쯤 해봤다.
나승서 서정학은 이번 작품이 국내 데뷔무대. 박기천과 더블캐스팅된 나승서는 2002년 프랑스 리옹오페라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세계적 스타 로베르토 알라냐의 대역으로 출연해 30분간 커튼콜을 받았다. 서정학은 한국인 남자 성악가로는 유일하게 미국 메트로폴리탄과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오페라 무대를 모두 밟은 주인공. 96년 메트로폴리탄 오디션 합격 후 미국에서 활동하다 유럽으로 진출, 유럽 최고 극장인 오스트리아 비엔나국립오페라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1999/2000, 2001/2002 두 시즌 주역을 했다.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모였으니 자존심을 건 대결도 기대할 법하다. 하지만 세 사람은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경쟁보다는 전체적 앙상블"을 강조한다. 오페라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가수 혼자 잘난 척 해서는 좋은 무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제발 가수에만 주목하지 말고 무대 전체를 봐달라"고 주문한다. 박기천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스런 소리를 지닌 반면, 나승서는 섬세한 표현으로 마음을 뒤흔드는 미성의 테너. 서정학은 "두 테너가 크게 다르고 연출도 가수에 맞춰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번 공연은 같은 제목의 다른 오페라로 봐도 좋을 것"이라며 "내 노래와 연기도 둘 중 누구와 공연하느냐에 따라 달리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공연은 독일의 ‘도이체 오퍼 베를린’이 1980년 필립포 산저스트 연출로 첫 선을 보인 프로덕션이다. 초연 이후 20년도 더 지났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공연되며, 그 때마다 매진이다.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연출이 유행하는 요즘 유럽 오페라극장의 기류와 달리 음악 중심의 고전적 연출이다.
여자 주인공 루치아는 미국인 소프라노 로라 클레이콤과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소프라노 김성은이 번갈아 나온다. 김성은은 그동안 몇차례 국내 공연에서 이미 많은 팬을 확보했다. 로라 클레이콤은 2003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 공연에서 "관객을 전율케 하는 완벽한 루치아"라는 평을 받았다. 관현악은 마르코 잠벨리가 코리안심포니를 지휘한다. 20~23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0-1300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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