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가 후겐두벨 서점 입구 전시대에는 세계 유명작가들의 이름있는 신작 소설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귄터 그라스에 버금갈 만큼 독일에서 명망 있는 마틴 발저,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 이름만 대도 알만한 작가들의 신작 양장본 소설책이 어깨를 맞대고 전시되어 있다.그런데, 프랑크푸르트에서 제일 크다는 이 서점의 가장 눈에 잘 띄는 이 전시대 위에 한국인 작가의 소설 한 권이 번듯하게 놓였다. ‘Chang-rae Lee Roman Turbulenzen’. 미국에서 올해 3월 출간된 재미동포 작가 이창래(39)의 신작소설을 독일어로 번역한 책(사진)이다. 영어로 나온 소설의 원제는 ‘Aloft(저 높이)’지만 독일에서는 제목을 ‘혼돈’ ‘소란’으로 바꿨다.
"8월에 출간됐는데 한 달쯤 전부터 잘 팔리고 있다." 나이가 지긋한 이 서점의 판매원 칵조르 슈테판씨는 지난 주까지 이창래의 이 소설이 20권 남짓 팔렸다고 했다. "한 달 동안 20권 팔린 걸 가지고 호들갑이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독일에서 책이 잘 나간다는 것은 국내와는 개념이 다르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슈테판씨에 따르면 "하루에 5권 팔리면 ‘대박’이고, 두 세 권만 나가도 인기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이창래 소설이 인기가 좋은 것은 한 달 전 독일 주요 언론들이 줄줄이 그의 소설을 상찬하는 서평을 실었기 때문이다. ‘정말 장엄하고 멋진 소설이다’(디 차이트),‘감명 깊은 가족소설’(슈피겔), ‘조너선 프란첸이나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작품에 결코 뒤지지 않는 훌륭한 가족소설이다’(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일요판), ‘잔잔하면서도 독자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소설. 한 가족이 점차 몰락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익살스러우면서 서글픈 가족서사시’(포쿠스), ‘너무나 포스트-포스트모던한 소설’(디 벨트). 한국인 아내와 사별한 뒤 아들, 딸과 함께 살아가는 60세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제리 배틀의 삶을 통해 미국 중산층 가족의 갈등을 보여주는 이번 작품이 ‘뛰어난 가족소설’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의 내년 주인공은 한국. 국내에서는 이 행사를 독일, 나아가 유럽에서 한국을 알릴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문학 관련서적 전시와 작가 참여행사다. 국내문학이 그 동안 독일어로도 적잖이 번역·소개됐지만, 작가들의 인지도가 높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국내 인기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번역해 알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국인 이민자의 미국생활, 종군위안부 등을 소설로 다뤘던 이창래처럼 독일인이 잘 알고 좋아하는 동포작가 초청행사를 갖는 것도 효과적인 한국 홍보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