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 박홍규 지음 / 청어람미디어 발행ㆍ1만2,000원우리말로 ‘수필’인 ‘에세이’를 제목으로 처음 책을 낸 사람은 프랑스의 미셸 드 몽테뉴(1533~1592)이다. 몽테뉴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사색을 즐겼지만, 그렇다고 요즘 생각하는 수필가 대열의 사람은 아니다.
그가 쓴 에세이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인생단상, 신변잡기가 아니라 학문적인 비평과 사상을 담은 오히려 논문에 가깝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철학자, 사상가, 문필가 정도로 어렴풋이 이미지가 그려지는 사람이다. 다방면의 학문과 사상에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학문활동을 벌이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학자가 되는 것을 혐오한 사람이다. 저작조차 아버지의 권유로 이탈리아 신학자의 책 한 권 번역한것을 빼면 ‘에세(Essais)’가 전부다.
지난해부터만 따져 베토벤, 알베르 카뮈, 프란츠 카프카, 조지 오웰, 에드워드 사이드, 에리히 프롬, 에리히 케스트너 평전를 잇따라 내며 놀라울 정도의 저술력을 과시하고 있는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가 이번에는 몽테뉴에 도전했다.
‘에세’의 진면목을 소개한다는 취지지만, 실은 ‘에세’에 몽테뉴의 인생관, 사상이 모두 녹아 있기 때문에 이 책 한 권으로 인간 몽테뉴 전반을 조망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에세’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책인데다, 일본책 중역이 다수이긴 하지만 번역본도 일찌감치 여러 종 나와있다. 그런데 박 교수가 유독 소개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가 있다.
‘몽테뉴를 이른바 철학자라는 이름으로 전혀 우습지 않게 만드는, 아니 골치 아프게 만드는 사람들이나, 이른바 수필가라는 이름으로 간지럽게 소개하는 사람들이 싫어서 몽테뉴에 대해 그들과 느낌이 달라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몽테뉴에게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심각하게 사색하면서도,도덕을 말하고, 인생과 정치를 논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웃는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몽테뉴가 가톨릭 신구교 싸움 등 ‘평생을 전쟁에 시달리면서 인간의 악행이란 악행은 모두 목도했고, 동시에 자신의 못난 점도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며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전쟁, 이데올로기, 정치,문화 이 모든 것을 눈물이 쏙 빠지게 비웃는다’고 했다.
몽테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나 원죄를 무시했고, 오로지 인간의 생명을 존중했기 때문에 ‘에세’는 20세기 초반까지 가톨릭의 금서였다.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쓰고 두 번이나 가필한 대작 ‘에세’를 두고 ‘경박하고 부질없는 일’이라고 서문에 쓴 것에서도 자유로운 성품이 드러난다.
이에 비해 몽테뉴를 본따서 에세이를 쓴 17세기의 파스칼과 19세기의 알랭은 ‘좀 고리타분한 도덕선생 스타일’이라고 저저는 지적한다.
박 교수가 그려낸 몽테뉴는 ‘18세기 볼테르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모든 지적 권위에 대한 치열한 비판자이자, 서양중심주의와 싸운 투사였으며 관용을 주장한 지성이었다.
몽테스키외가 등장하기 이전에 민속학과 비교법학을 주장했으며, 페스탈로치가 등장하기 이전에 자유로운 아동교육을 말한 선구자였다. 심지어 프랑스 혁명의 선구자로, 헤르더 이전에 민중문학을 세우고 자연에의 회귀를 주장한 사람’이다.
저자는 모두 3권 107개 장의 ‘에세’ 여러 대목을 자유롭게 인용해가며 몽테뉴의 사상 전반을 보여주고 있다. 직접 몽테뉴성을 방문한 경험을 곁들여 글이 더욱 생생하다. 그리고 저자는 당부했다. 이 책을 읽고 ‘에세’에 대해 아는 체 하지 말기를, 제발 ‘에세’를 읽고 16세기 한 인문주의자의 인간애와 회의주의 정신에 무릎 치고 한번쯤 웃기를.
/김범수기자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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