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메 유모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지음ㆍ백은실 옮김 / 한길사 발행ㆍ1만2,000원“역사가들은 몰랐을 것이다, 저 유명한 네로 황제에게 쌍둥이 형인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존재를 드러낸 네로의 쌍둥이 형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독살당한 의붓아비 클라우디우스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네로. 역사에 따르면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를 차례로 살해했고,시를 읊기 위해 로마시를 불태운 대화재를 일으키고 그 책임을 그리스도교도에 돌려 대학살을 감행했다 하니, 참으로 돼먹지 못한 인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자신이 사주했다고 네로의 쌍둥이 형이 고백한다. 네로와 한날 한시에 태어났으나 조심성 없는 산파가 바닥에 떨어뜨렸고 그 아픔에 크게 운 탓에 어미로부터 버림받고 황제가 될 수 있는 기회로부터 멀어진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분노부터 배웠단다.
이 무슨 엉뚱한 이야기이냐고? 바로‘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67)의 얘기다. 그녀는 천상 이야기꾼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에 번역돼 나온, 1983년에 쓴 ‘살로메 유모 이야기’는 시오노의 도발에 가까운 인물분석과 더불어 그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이름없는 화자들의 속삭임에 절로 귀가 기울여진다.
서구문명이 뿌리를 두고 있는 지중해 지역의 10명의 인물 오디세우스, 살로메, 예수, 유다, 칼리굴라 황제, 네로 황제, 브루투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단테, 성 프란체스코의 행적에 대한 고전적 해석을 뒤집기도 하고 그들의 최측근들, 심지어 애마의 입을 빌어 그들의 행적을 정당화하는 스토리텔링은 그럴 듯하다.
예수와 두 살 터울의 동생은‘낡고 조잡한 유대의 예언서 사본이나 읽고 있던, 골칫거리 형’으로 예수를 기억한다.‘원수도 사랑하라’던 예수가 정작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에게는 깊은 상처를 준다. 예수가 고향 나자렛에서 설교를 하러 온 예수를 만나러 간 두 사람은 “내 어머니란 누구인가.
내 형제란 누구인가. 내 어머니, 내 형제는 주의 말씀을 듣고 그를 행하는 사람 모두이니라”란 외침에 발길이 멎는다. 그럼에도 동생은“그의 말이내 가슴에는 깊이 남는다”며 형 예수를 감싼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고향 유대교 사제는 그의 심리를 추리해본다. 남달리 치맛바람이 심했던 어머니와 예수로부터의 정신적 지배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으나 결국에는 예수를 팔아 넘기는 실수를 범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가엾은 인간, 무지렁이에 가까운 예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가장 인텔리이면서도 인정받지 못한 유다의 고뇌를 동정한다.
그 어미는 아들의 죽음을 소재로 책을 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는 등의상상도 당돌하다.
오디세우스의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는 남편의 영웅적 모험담에 대한 과대평가가 어이없다는 투다.‘트로이 목마’의 계략을 생각해낼 정도의 인물이니 전쟁이 끝난 뒤 여기저기 방랑하다 귀가가 늦어진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도 오디세우스로서는 식은 죽 먹기일 터.
시오노는 페넬로페가 20년간의 오디세우스의 부재 동안 숱한 사내들의 청혼을 물리치는 바람에‘정숙한 아내’의 전형으로 불리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고 풀이한다. 그동안 마음에 차는 남성이 없었을 뿐, 오디세우스의 귀국 얼마 뒤 이혼했다는 것이다.
춤의 대가로 예언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살로메의 행동은 단지 자신이 갈구한 사랑을 거부당한데 대한 앙갚음에 불과했을까. 이집트 출신 유모는 살로메가 왕녀로서, 딸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전략가라고 이야기한다. 민중의 동요를 우려해 요한의 처형을 주저하는 아버지 헤로데 왕을 위한 전략적 배려였다는 것이다.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된 사람, 젊은 나이에 요절한 사람이었기에 영원한여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이겠죠. 시의 여인에게 질투해봐야 소용없는 일 아닙니까.” 단테의 아내 젬마의 탄식도 들어볼 만하다. ‘모든 고귀한 행위와 예술적 영감의 근원’으로서 단테의 ‘영원한 여인’베아트리체의 그늘에 가려졌던 젬마의 현명함이라니.
이집트여왕 클레오파트라, 트로이의 헬렌, 프랑스 혁명의 꽃 마리 앙투아네트, 소크라테스의 악처 크산티페,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 등이 악마대왕 벨파고르의 초대를 받은‘지옥의 향연’에서 벌이는 수다에서도 지중해의역사에 빠진 시오노의 입심을 느낄 수 있다.
/문향란기자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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