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은 일에 매달리면 한가지 일도 제대로 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라고 직책과 역할이 있는 것이다. 물론 다중인격도 있는가하면 팔방미인도 있다.진료도 하며 시를 쓰는 기발한 의사도 있고 수도생활을 하며 노래도 부르는 재능 있는 수녀들도 있다. 어떤 이발사는 본업이외에 자원봉사활동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보편적 상황이라기보다는 예외적 상황일 터이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데 주력하고 판사는 판결을 내리는데 최선을 다하며 교사는 학생을 잘 가르치면 된다. 또 그것이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법이다. 의사는 진료만, 약사는 조제만 담당하는 의약분업도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자신의 전문영역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존경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물안에 개구리’라고 얕보아서는 안된다. ‘우물안의 개구리’라도 남의 우물을 넘보지않고 바깥세상을 기웃거리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우물을 열심히 파면 존경 받는 개구리가 되지 않을까.
공연히 바깥을 잘 모르니 바깥세상으로 나와야 한다면서 개구리를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 무엇이든 한가지만 딱 부러지면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그런 역할분담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자녀교육도 부모 스스로 하지 않고 학교에 맡기며 외국여행을 갈 때도 전문업체인 여행사를 이용하고 있다. 정치라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전문영역일 터이다.
모든 사람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면 정치가 뒤죽박죽이 될 수 있기에 전문가인 정치인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신앙을 전하는 종교인이나 과거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처럼 행동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정부가 하고 있는 일들이 바로 그런 일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를 혁신하고 사회의 주류를 바꾸며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일, 혹은과거를 바로 잡는 일이라면, 정부본연의 업무라기보다 교육자나 역사학자의 영역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정부는 여러 가지 일만 벌려놓고 있을 뿐 별반 성과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이 해결되려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의 기본이란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켜주고 민생을 챙기는 일이다.
또 이런 일을 하라고 대통령을 뽑고 과반수 여당을 만들어준 것이다. 체감경기는 바닥이고 민심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양분되어 흉흉한데, 분배나 자주, 균형발전 등 거대담론에 속하는 국정어젠다만을 쏟아내고 여기에 줄기차게 매달리는 참여정부는 사춘기 시절의 소녀처럼 ‘꿈이 많은 정부’인 것 같다.
하지만 꿈만 많아서는 곤란하며 현실을 돌아보고 실사구시(實事求是)해야한다. 당장 제일 급한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이 갈구해 마지않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은 경제야, 이 바보야!”하고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중국은 물론, 일본까지도 성장동력을 되찾고 있는데, 카드빚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에서 과거사니 보안법이니 하며 온갖 백가쟁명으로 날을 지샌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영어사전을 보면 a다음에 b가 나오고 그 다음순서가 c다. c가 먼저 나오는 사전은 없다. 매슬로우의 욕구의 위계질서도그렇다. 제일 먼저 ‘결여의 욕구’를 채운 다음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민생에 관한 욕구도 해결하려 하지 않고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일에 몰두하겠다고 하면, 수영의 기본도 배우지 않고 물에 뛰어 드는 성급함과 다르지 않다. 혹은 기초실력도 없는 학생이 영재반에 들어가겠다고 난리를 치는 일과 비슷하다.
현재의 상황이 절박한 데 2008년에는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되고 OECD국가중 최고수준에 이른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 것인가. 정부는 절박한 현실적관심사, 즉 경제살리기와 나라희망살리기, 민심의 통합에 ‘올인’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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