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남편과 딸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 고통의 무게는 얼마일까. 어두운 과거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택했던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면 또 얼마나 무거운 아픔에 짓눌릴까. 그리고 남의 심장을 이식 받고도 생의 벼랑 끝에 서게 된 사람에게 삶의 중량감은 어느 정도일까.영혼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기위해 미국의 한 과학자는 죽음을 앞둔환자의 몸무게를 재고, 숨을 거둔 후 변화된 체중을 측정했다. 그 결과 21g이 감소한 것을 발견한 그는 줄어든 양이 영혼의 무게일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영화 ‘21그램’은 이 가설을 바탕으로 참을 수 없는 사랑과 증오의 무거움을 영혼의 무게 21그램과 비교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가쁜 숨을 몰아 쉬며 죽음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서던 폴(숀 펜)이 심장이식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된다. 심장 주인이 교통사고로 두 딸과 함께 비명횡사한 것을 알게 된 그는 미망인 크리스티나(나오미 와츠)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든다.
크리스티나는 가해자에게 복수를 꿈꾸면서 술과 마약으로 몸을 망가뜨리고, 범죄자 출신으로 과거를 씻고 종교적인 신앙으로 구원 받고자 했던 잭(베네치오 델 토로)은 음주운전으로 크리스티나의 행복을 앗아가면서 그 종교적 ‘믿음’의 배반에 절망한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행의 구렁텅이에 던져진 세 명은 결국 파멸의 소용돌이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교통사고를 고리로 엮어진 이들의 부조리한 삼각관계를 영화는 전통적 화법과 달리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에 얽매이지 않는 편집과 삭막한 화면으로풀어낸다. 처음 관객을 당혹스럽게 하는 낯선 서사구조는 간단하게 설명될수 없는 삶과 영혼의 문제를 훌륭히 담아내는 장치로서 역할을 다한다.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2000년)에서 교통사고를 축으로 급격히 무너져내리는 인물들의 세가지 에피소드를 기발한 형식미와 빠른 리듬으로 그려내 평단과 관객의 열띤 호응을 받았던 멕시코 출신 알렉한드로 곤잘레스이냐투투 감독은 전작보다 더 무거워진 주제와 형식으로 ‘21그램’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 냈다.
명성 만큼 기본기가 탄탄한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의 앙상블도 감독의 연출 실력을 뒷받침해준다. 숀 펜은 이 영화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베네치오 델 토로와 나오미 와츠도 각각 남녀배우 관객상을 수상했다. 21일 개봉. 18세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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