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히 빚을 갚을 경우 남은 원금까지도 탕감해주기로 한 개인회생제의 당초 취지가 비현실적인 요건 등으로 빛을 잃고 있다.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개인회생제가 시행된 이후 20일째인 12일까지 접수된 신청건수는 120여건. 이 가운데 법원 회생위원들과의 1차 면담을 거쳐 변제계획안이 완성된 5건에 대해 처음으로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5건 중 절반 이상인 3건의 경우 원금 탕감 없이 채무를 전액 갚는 조건으로 돼 있으며 나머지 2건도 원금 변제 비율이 각각 91%, 79%에 달한다.
채무자들은 “빚 변제조건이 너무 까다롭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현행 개인회생제는 최저생계비의 150%를 제외한 월 수입 전부를 8년 동안 법원에 지급해야 한다. 기간이 길다 보니 상당수 채무자들은 8년 안에 원금을 전액 갚게 돼 실제로 원금 탕감 혜택은 부채가 많은 소수한테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법원을 찾은 한 채무자는 “선고 즉시 채무를 면책 받는 개인파산제와 달리, 개인회생제는 8년간 최저생계비의 1.5배 금액으로만 살아야 하는 고통이 뒤따른다”며 “원금을 모두 갚아야 한다면 누가 개인회생제를 택하겠느냐”고 말했다.
개인회생 사건을 수임하고 있는 김관기 변호사는 “개인회생제는 변제조건이 너무 가혹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의뢰인들에게 개인파산제를 권유하고 있다”며 “변제기간 단축 등 제도 보완이 없는 한 특정 소수만을 위한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채무자 뿐 아니라 채권자의 입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원금을 탕감 받지 못하더라도 재산 처분 없이 기존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만큼 채무 당사자가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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