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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소설은 사랑 대신 섹스만"…佛 소설가 로제 그르니에 예술원 50주년 초청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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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소설은 사랑 대신 섹스만"…佛 소설가 로제 그르니에 예술원 50주년 초청강연

입력
200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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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설에는 사랑은 없고, 정사(情事)만 있습니다. 시, 소설, 연극의 주된 주제는 사랑입니다.”대한민국예술원이 개원50주년을 맞아 마련한 국제심포지엄에서 프랑스의 원로 소설가 로제 그르니에(85)는 ‘오늘의 문학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부박하고 상업화한 문학의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17세기 라파예트의 소설 ‘클레브 공작부인’을 예로 들며 “클레브부인과 느무르 공작 사이의 ‘힘든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스탕달 등 여러 작가에게 영향을 끼쳤다”며 “하지만 18세기부터 소설은 ‘사랑’이 아닌 ‘쾌락’을 이야기하고, 그 시대 물질주의적 철학과 맞물리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19세기 문학의 변천과정을 언급한 뒤, ‘몇 년 전부터 소설이 어디로가는 거지?’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기 시작했다며 본격적인 소설위기론을 거론했다.

그는 “정사장면에 대한 묘사에 남성작가보다 여성작가들이 더 대담한데,그들이 라파예트처럼 사랑은 위험한 감정이므로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자 출신인 그르니에는 과도한 상업주의와 매스미디어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문학과 별 상관없는 작품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반면, 문학적 야심을 표방해온 작가들이 서점 진열장의 한쪽 자리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과거에는 ‘기자가 쓴 소설’이라는 말이 칭찬이 아니었지만, 요즘은 매스미디어에 종사하는 이들이 서로서로 열정적으로 선전을 해준다”고 비꼬기도 했다.

그는 “글쓰기는 음악과도 같아, 때로는 원고의 반 페이지만 읽어도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며 “그 같은 감동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길을 잃지 않고, ‘어떤 조국’과 피난처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프랑스 문단의 거장으로 대접 받는 그르니에는 ‘겨울 궁전’ 등 작품으로 페미나상,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단편집 ‘물거울(문학동네 발행)’과 산문집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현대문학 발행)’가 국내 번역돼 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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